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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 최종 목표는 '사랑'입니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31.

[말씀묵상]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 최종 목표는 ‘사랑’입니다

연중 제31주일

제1독서(신명 6,2-6) 제2독서(히브 7,23-28) 복음(마르 12,28ㄱㄷ-34)

가톨릭신문 2021-10-31 [제3267호, 15면]

 

신앙인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하느님 사랑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

나를 돌아보고 이웃 위해 살아가길

 

 

그 모든 것이 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수도자로 양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형제들에게 요구하는 몇 가지 작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적자서전’입니다. 지금까지의 내 삶 안에서 펼쳐져왔던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서술하는 것입니다. 영적자서전을 다 쓰고 난 한 형제가 이런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길이었지만, 돌아보니 굽이굽이 어느 한곳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나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크게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로지 그분 사랑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 형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저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내 인생은 오로지 나의 역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 인생은 가만히 분석해보니 ‘하느님 사랑의 역사’였습니다. 철저하게도 부족한 나, 정말 보잘 것 없는 나, 쥐뿔도 내세울 것이 없는 나, 너무도 부당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인내와 사랑으로 참아주신 하느님 사랑의 역사가 제 지난 삶이었습니다. 그분 자비가 아니었더라면, 그분 연민의 눈길이 아니었더라면, 그분 사랑의 손길이 아니었더라면 단 한 순간도 서있을 수 없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일생일대의 과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우리를 향한 그분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가늠해보는 일입니다. 그분을 좀 더 알고 이해한 만큼 우리는 그분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정체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순간,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더 한층 깊어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하느님 사랑을 파악한 사람만이 ‘제대로 된’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 그 사랑이 용광로보다 더 뜨겁고 강렬합니다. 때로 너무나 절절합니다. 때로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때로 필요한 순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차가운 사랑, 냉정한 사랑도 보내십니다. 때로 우리가 교만의 늪에 빠져있을 때, 때로 우리가 착각 속에 기고만장해있을 때, 때로 우리가 나태해져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고통이라는 사랑의 매를 드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이 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다양한 순간들이 우리 삶을 스쳐지나갑니다. 성공의 순간, 기쁨의 순간, 환희의 순간…. 그러나 때로 실패의 순간, 슬픔의 순간, 절망의 순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필요했었습니다. 그 모든 국면들은 다 하느님 사랑의 발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결국 사랑이 전부입니다.

 

나이를 조금 먹고 나서야 사랑에 대해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사랑은 이팔청춘 때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서른 안팎까지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사랑을 알고 난 후 그것은 너무나도 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병세가 위중해도, 아무리 인생의 막장 앞에 설지라도, 그럴수록 사랑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은 목숨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필요한 것이더군요. 이 세상에 사랑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만사가 잘 풀릴 때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꼬이고 꼬인 인생길을 걸어갈 때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은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는 지긋지긋한 그 ‘존재’와의 관계 안에서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하면 만사가 ‘OK’인줄 알았습니다. 사랑에는 늘 기쁨과 감미로움만 따르는 줄 알았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면 향기로운 장미꽃 길만 계속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랑에는 괴로움이 뒤따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됐습니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고통의 길을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희생을 각오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코 12,29-31)

 

결국 사랑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사랑만이 그리스도인 인생의 전부입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인생문제의 해답입니다. 사랑은 우리 삶의 최종 기착지입니다. 결론적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시절입니다. 참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늘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라도 내 그릇된 언행, 부족한 사고, 빈약한 가치관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좀 더 사랑스런 존재, 이웃들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로 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는 1994년 사제품을 받고 영성신학 전공으로 로마 살레시오대학교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서울 대림동 수도원 원장, 수련장 및 대전 정림동 수도원 원장, 서울 관구관 원장, 부관구장, 관구장 등을 역임해 왔다. 현재 태안 내리공동체 원장 겸 살레시오 피정센터 담당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