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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파라오의 완고한 마음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9.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파라오의 완고한 마음(탈출 9,13-12,36)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스물여덟 번째 순례 여정은 주로 파라오의 궁궐에서 이루어집니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파라오는 그의 권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화려하고 장엄한 궁궐에서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의 맞은편에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모세와 아론이 서 있습니다. 완고한 파라오는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일곱 번째 파라오를 찾아와 우박 재앙을 경고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파라오의 신하들은 이 경고를 받아들여 종들과 집짐승들을 피신시켰습니다. 이윽고 유례없던 번개와 우레, 우박이 이집트 전역에 내립니다. 그러자 파라오는 잘못을 인정하고 모세에게 기도해 줄 것을 청합니다. 모세의 기도로 우박이 멈추자 파라오는 다시 마음이 완강해졌습니다. 여덟 번째로 메뚜기 재앙이 들이닥칠 것을 경고하자 파라오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낼 것을 제안합니다. 파라오는 모세에게 아이들과 노인들, 아들딸들과 양 떼와 소 떼는 남겨 두고 장정들만 가서 주님께 예배하라는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타협안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메뚜기 떼가 이집트 전역을 덮쳐 푸른 잎을 모두 먹어 치우자 그제야 파라오는 죄를 인정하고 모세의 기도를 청합니다. 모세의 기도로 메뚜기 떼가 사라지자 파라오는 다시 마음이 완고해졌습니다. 아홉 번째로 어둠의 재앙이 내리자 파라오는 다시 협상안을 내놓습니다. 주님께 예배를 드리러 가되 양 떼와 소 떼만 남겨 두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짐승 한 마리도 남아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완고해진 파라오는 모세에게 다시 얼굴을 보게 되는 날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결국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모조리 죽는 열 번째 재앙이 일어나고 나서야 파라오는 마침내 한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집트 땅을 떠나가라고 말합니다.

 

파라오가 하느님을 알아보는 데 이토록 굼뜬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라오의 완강한 마음에 관하여 성경은 다양한 설명을 제시합니다. 파라오의 완고함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재앙이 즉각적인 효과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의 미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파라오가 자발적으로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한없는 인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탈출 7,5; 9,14-16; 10,1-2 참조). 하느님은 진작에 파라오를 응징하실 수 있으셨지만, 이집트인들이 하느님의 크신 능력을 알아보고 인정하게 되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하느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 하느님께서 참으로 세상의 주님이심을 알아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파라오의 완고함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아보는 데 굼뜬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파라오는,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나 되는 듯이 살아갑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세상의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을 세상의 주인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진지하게 우리 삶을 둘러본다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소한 일상이 사실은 하느님의 주권으로 충전되어 있고, 오직 그것만으로 유지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함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라오처럼 모든 것을 잃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이것을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가톨릭마산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