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이야기에 물드는 삶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1독서(다니 12,1-3) 제2독서(히브 10,11-14.18) 복음(마르 13,24-32) 가톨릭신문 2021-11-14 [제3269호, 15면]
임박한 종말, 공동체를 향해 “깨어있으라” 메시지 강조하신 예수님 세상의 끝은 ‘무(無)’가 아니라 주님의 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상징 하느님의 빛과 지혜로 고난 극복하고 새로운 삶 속에서 행복 찾길
“가까이 오라/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라.”(래미 드 구르몽)
인생을 마무리하는 죽음을 생각하는 위령 성월인 11월, 전례력으로 연중 제33주일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고 다음 주일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자 성서주간을 시작하는 주일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왜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주일 후 성서주간이 이어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말이나 체험은 기억 안에 저장돼 계속 재해석하면서 삶을 빚어가는데요, 제가 성서사도직을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해석학’입니다. 성경에서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만이 아니라 영적인 가난, 곧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경청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는 능력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가난해지고 가난해지기 위해서 성경을 읽습니다.
■ 복음의 맥락
복음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분인 예수님 생애의 마무리에 해당합니다. 마무리이지만 절정이지요. 마르코 복음 13장의 중심 주제는 ‘예수님의 종말론’ 가르침입니다. 원래 이 본문의 의도는 사람들이 종말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었는데 마르코는 이 본문에서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를 지향하는 영성을 보여줍니다.(마르 13,26.29-30) 13장 담화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깨어있으라”입니다. 마르코 공동체는 핍박과 박해를 받는 공동체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공동체를 향한 마르코의 메시지는 부활한 예수님이 박해당하는 사도 바오로에게 준 메시지와 거의 일치합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 예수님 이야기, 내 이야기
마르코는 가난하고 핍박당하는 마르코 공동체 신자들의 삶을 위해 오늘 본문을 기록했지만 오늘날 우리 삶에도 적용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례란 “예수님과 함께 고난당하고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것”(로마 6장)이라면 예수님 생애의 신비는 바로 우리 생애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속임수와 희망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하게 되는 그릇된 종말론에 대한 흥분을 다시 바로 잡습니다. 이 모든 것은 종말에 대한 기대가 늦춰지고 있다고 여기는 초대 교회 독자만이 아니라 신앙에 반대하는 온갖 것들에 마음이 끌리고 신앙의 의미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고 있는 우리 상황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예술, 사상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끝은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온갖 기대를 넘어서며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충만함 안에서 인간의 온갖 희망이 이어질 것입니다. “마라타나, 오소서, 주 예수님!”(1코린 16,22) 주님의 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간직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삶을 제대로 살아가게 하는 방향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해 말하고 무화과 비유를 통해 그분에게 다가올 수난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은 영광에 이르기 전에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중세 영국 독수자인 노르비치의 줄리아나는 「하느님 사랑의 계시」에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우리도 많은 고난을 겪겠지만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시편 화답송에서 고난을 겪는 한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하느님의 섭리 아래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자세를 유지할 것입니다. 감사는 자기 삶이 온전히 창조주에게 달렸음을 믿는 신앙의 행위이자 자신이 선물로 받는 것을 헤아릴 줄 아는 행위입니다.
셋째,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삶을 해석하는데 있어 성경 이야기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나를 읽는다!’ 옛날에는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했었는데 요즘은 제 삶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성경 이야기를 읽습니다. 스스로에게는 감추어져있지만 하느님에게는 환히 드러나 있는 것! 각자 소명에 따라 빛깔과 모양은 다르지만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예수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 생애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이 나옵니다. 행복선언이나 주님의 기도 같은 놀라운 가르침, 경이로운 병자 치유,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와의 지혜로운 논쟁….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다양하게 지속적으로 영감과 영향을 주는 이야기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 신자들도 이미 체험한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이 체험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 성찰
몇 달 전 성경 특강을 마치고 신천지에 몇 년 있다 탈퇴한 젊은이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신천지에서 들은 것과 강의 내용이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질문했더니 이 지혜로운 젊은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경을 역사와 맥락 안에서 해석하라는 점이 달랐어요. 신천지에서 들은 좋은 말과 중첩되는 것들도 있었는데, 저는 왜 이 좋은 이야기를 성당이 아니라 신천지에서 먼저 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에게 정체성과 삶에 대한 해석을 제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포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삶을 비춰주고 해석할 이야기입니다. 바로 하느님 이야기 말입니다. 예수님 이야기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지혜는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고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합니다. 삶을 이끌어가는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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