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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성경 속 식물 이야기] 신앙의 승리 대추야자나무1)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16.

[성경 속 식물 이야기] 신앙의 승리 대추야자나무1)

엄혜진 헬레나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2019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이라는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황금종려상은 칸 영화제에서 가장 큰 상을 말하는데, 종려나무 가지를 트로피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칸’이라는 도시에 종려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그 의미가 ‘승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는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불에 태워도 다시 싹이 납니다. 그래서 이 나무의 학명(Phoenix dactylifera)에는 불사조(不死鳥)를 뜻하는 피닉스(phoenix)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예리코는 ‘야자나무 성읍’(신명 34,3 참조)이라고 표현될 만큼 종려나무가 많았습니다. 오아시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려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간직하여 여행자들에게 그늘이 되어주었고 그 열매는 당분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또한 종려나무는 사막의 강한 바람을 받으면서도 곧게 자라기에 의인에 비유되어 정직과 정의, 공정을 상징합니다(시편 92,13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탈출 후 광야에서 생활할 때, 하느님께서는 초막을 짓게 하여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후대에도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초막절 축제를 크게 지내는데, 이때 종려나무 가지를 초막 위에 덮고 흔들면서 감사와 축제의 기쁨을 표현합니다(레위 23,40 참조).

 

또한 기원전 2세기에 마카베오 임금이 예루살렘을 해방시킨 후 도시에 들어갈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1마카 13,51 참조). 이런 역사적 배경을 기억하고 있던 예루살렘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임금’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요한 12,13 참조). 같은 의미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죽음 후 승리와 부활,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 카타콤베의 벽화나 부조장식에 많이 활용하였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묵시 7,9 참조).

 

한국 천주교 124위 순교복자 성화를 보면, 순교자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묵시록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순교자들의 모습이 종려나무를 닮았습니다. 주님의 샘에 뿌리를 뻗고 수난 속에서도 허리를 곧게 하여 두 팔을 활짝 펼쳐 하느님을 찬미하던 순교자들…! 우리도 신앙 유산을 잘 간직하여 순교자들처럼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하느님의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성경」(2005)에서는 대추야자나무와 야자나무, 종려나무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모두 동일한 나무를 지칭하며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종려나무와는 식물학적으로 다릅니다. 여기서는 종려나무로 통칭합니다. : 김영숙, 성경의 식물 명칭에 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대구가톨릭대학교대학원, 2017. 21 참조.

 

[2021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