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베드로 수위권 성당 김명숙 소피아 박사
갈릴래아 호수에는 ‘베드로 수위권’이라 하는 성지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재확인하신 곳입니다(요한 21,19). ‘수위권’은 교회의 수장이 되는 권리를 뜻하지요. 베드로가 수위권을 처음 받은 곳은 카이사리아 필리피였습니다(마태 16,13-20). 그곳에서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시고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며 수위권을 확인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체포당하신 뒤 대사제의 집에서 사람들과 불을 쬐던 베드로는 그분을 모른다며 부인하였습니다(루카 22,54-62).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느낌이 어땠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에 열중해 있을 때 나타나십니다. 밤새 허탕 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요한 21,6) 하시니 백 쉰 세 마리가 잡혔습니다. 주님을 알아보고 제자들이 뭍으로 나오자 불이 피워져 있었고요, 예수님은 그들을 아침 식사로 초대하셨습니다. 베드로 수위권 성당 안에 보존된 ‘멘사 크리스티’(주님의 식탁)가 그 장소라고 전해집니다.
그 뒤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불러 세 번 물어보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말이지요. 예수님은 이 질문을 ‘아가페’로 하셨습니다. ‘헌신하는 사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답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마침내 ‘필로스’로 답합니다. ‘친구 간의 우정’을 뜻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재차 ‘아가페’로 물어보시지만, 그분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아마도 ‘아가페’로 답하기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다시 ‘필로스’로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필로스’로 물어보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제 사랑이 아직 필로스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슬퍼하며 답하지요. 예수님은 그의 답을 들으실 때마다 당신의 양떼를 맡기시며 그의 수위권을 재확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질문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는 계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실 사랑은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에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옛사람들이 이해한 사랑의 의미는 ‘충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 질문은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이 애틋한 지를 묻는 게 아니라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해 당신에 대한 신의를 지킬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베드로의 사랑은 ‘필로스’에 머물렀지만, 이후 ‘아가페’로 승화합니다. 그는 로마 경기장에서 순교할 때 차마 예수님처럼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자기 목숨을 봉헌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변화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줍니다. 지금은 나의 신앙이 ‘필로스’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1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일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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