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카르멜 산과 엘리야 김명숙 소피아
이스라엘 북서쪽에는 카르멜 산이 자리해 있습니다. 기원전 9세기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서 참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인 곳이지요. 현지 말로는 ‘무흐라카’, 곧 ‘불의 제단’이라 일컫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에 맞서 쌓은 제단에 주님께서 불로 응답하셨다(1열왕 18,20-40)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민둥산이 많지만, 카르멜은 나무가 우거져 아름답습니다. 특히 바다 위에서 보는 위용이 인상적이라 옛 가나안의 선원들은 해안가를 따라 뻗은 카르멜 산맥을 신들의 거주지로 여겼습니다.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기 북왕국의 임금은 아합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북쪽에 자리한 페니키아와 관계를 증진하려고 시돈의 공주 이제벨을 아내로 맞았습니다(1열왕 16,31). 바알과 아세라교가 북왕국에 정식으로 들어온 것도 이때지요. 그렇다고 바알 숭배가 이때 싹텄다는 뜻은 아닙니다. 놀랍겠지만 이스라엘의 첫 임금인 사울의 아들 이름도 ‘바알의 사람’을 뜻하는 ‘에스바알’(1역대 8,33)입니다. 이제벨의 등장에 바알 신앙의 물꼬가 터진 것뿐이지요. 그렇지만 아합이 이스라엘 신앙을 버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의 두 아들 이름인 아하즈야(1열왕 22,52)와 요람(2열왕 3,1)이 저마다 ‘주님께서 붙잡으시다.’ ‘주님께서 들어 높이시다.’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북왕국 임금 아합은 한 종교만 택하기보다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려 한 것 같습니다.
이집트 탈출의 기적도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째서 바알과 아세라 같은 우상에게 그토록 끌렸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거든요. 풍우신 바알과 풍요의 여신 아세라는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다익선이라고, 하느님뿐 아니라 이들도 섬겨주면 복을 갑절로 받으리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엘리야는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1열왕 18,21) 하며 백성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바알 예언자 사백오십 명을 카르멜 산으로 불러 모읍니다. 저마다 제물을 올렸을 때 어느 제단에 불이 내리는지를 보고 어느 신이 참하느님인지를 가르기 위해서였습니다. 먼저 바알 예언자들이 신을 불러 보았지만 응답을 얻지 못했습니다(18,28-29). 그러자 엘리야는 돌 열두 개로 부서진 하느님의 제단부터 복구하고, 제물을 올린 뒤 열두 동이의 물을 갖다 붓습니다. 당시 북왕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으니(18,2) 물은 그야말로 피와 같은 것이었지요. 엘리야는 이를 통해 비를 관장하는 신이 바알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증명하려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단의 물까지 살라버릴 불을 내리시자, 참하느님의 존재는 증명되고, 북왕국을 괴롭히던 가뭄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18,41-46).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던 북왕국에 참신앙의 불을 다시 지핀 카르멜! 구약의 유적지인 이곳은 그리스도교인들뿐 아니라 유다인들도 찾아오는, 일종의 종교적 화합을 느끼게 해주는 귀한 성지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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