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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9.

[말씀묵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대림 제1주일

제1독서(예레 33,14-16) 제2독서(1테살 3,12-4,2) 복음(루카 21,25-28.34-36)

가톨릭신문 2021-11-28 [제3271호, 15면]

 

항상 깨어 기도하면 하느님 재림하시는 날을 기쁘게 맞을 수 있어

신앙과 삶, 의지의 정화가 이뤄지는 순간 주님의 힘은 다가오게 돼

 

 

품위와 기본을 회복하는 대림 시기

 

술을 마셔보니 그렇더군요.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에 꼭 뒤따르는 것이 이성 상실이요 초대형사고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들이마시지만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들이마십니다. 평소 성인군자처럼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합니다. 갑자기 기고만장해집니다. 평소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분노와 공격성을 아낌없이 표출합니다. 결국, 술로 인해 큰코다치고 풍비박산 난 가정을 한두 번 본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꼭 뒤따르는 것이 갖은 불평불만이요 험담이요 뒷담화입니다. 멀쩡한 사람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돌려가면서 난도질합니다. 과도한 음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음란과 방탕, 다툼과 폭력으로 발전합니다.

 

이런 면에서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니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덕목이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품위’입니다. 과도한 술꾼들을 위해 바오로 사도께서 정확한 처방전을 내려 주셨습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로마서 13장 12~13절)

 

품위를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이성과 평정심을 상실한 상태이니 행실이 얼마나 기괴하겠습니까? 한 인간 안에 이성과 지성이 사라지고 육체만이 남게 되니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가 유치원생보다 못합니다. 결국 동물적 본능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품위를 상실한 사람들은 깨어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깨어있지 못한 사람들은 뭔가에 잔뜩 취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뭔가에 잔뜩 빠져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대체로 무엇에 취해 있고 무엇에 빠져있습니까? 술에 잔뜩 취해 있습니다. 재물에 완전 빠져있습니다. 부질없는 명예욕에 취해 있습니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기와 사람들의 박수갈채에 빠져있습니다.

 

품위 있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까, 고민해봅니다. 아무래도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상식과 예의범절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 다른 생명체와 인간을 구분 짓는 영혼을 돌보며 살아간다는 것, 결국 깨어있는 삶이겠습니다.

 

 

인간의 끝에서 시작하시는 하느님

 

운전 중에 들은 복음 성가 가사가 제 가슴을 크게 치더군요. “인간의 끝에서 하느님께서 시작하십니다. 내가 죽을 때 하느님이 살아나십니다. 내가 맥없이 허물어질 때 하느님이 움직이십니다. 내가 산산조각날 때 하느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인간의 실패 후에 하느님 자비와 은총이 펼쳐집니다. 인간이 지나가고 하느님이 나타나십니다.”

 

오늘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 돌아보니, 지난 한 해도 어김없이 결핍과 상처투성이의 삶, 실패와 부끄러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깊은 상처 그 틈 사이로 크신 주님의 자비가 흘러들어왔음을 실감합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각별한 당부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고 계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 복음 21장 34절)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시간을 헛되고 의미 없이 보냈습니다. 내 인생 여정에서 앞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금쪽같은 시간을 흥청망청 놀고, 먹고, 마시는 데 소모했습니다. 모든 것 하느님 자비하신 손길에 맡겨드리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오랜 시간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놀고,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한 치 앞만 내다보게 되니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듭니다.

 

남아있는 시간, 남아있는 인생을 주님 권고에 따라 살아가야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복음 21장 36절)

 

깨어있음은 언제나 기도와 연결돼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일정 시간은 잠을 자야 하는 인간이기에 항상 깨어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생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그러나 잠드는 순간, 잠자는 순간조차도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할 때 역시 주님께서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그 역시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깨어 기도함을 통해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에도 굳건하고 기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기다림

 

전례 시기가 돌고 돌아 또다시 기다림의 계절, 대림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돌아보니 우리는 참으로 많은 기다림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이 제발 빨리 좀 물러가 줬으면 하는 기다림,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이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기다림, 내가 꿈꾸고 있는 목표에 어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기다림, 살림살이 좀 나아질 미래의 어느 순간에 대한 기다림…. 이렇듯 우리네 삶에서 기다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오늘 우리에게 보다 품격높은 기다림, 순도 높은 기다림, 수준 높은 기다림을 요구하십니다.

 

언젠가 제 신앙 여정 안에서 작은 깨달음 하나가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묘한 분이시라는 것. 간절히 염원하고 기다릴 때, 너무나 절박해서 울부짖을 때, 많은 경우 바로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 뜸을 좀 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칠 것 같은 순간인데 하느님께서는 즉각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여백, 공간, 여유를 두시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 의지의 정화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의 모든 인간적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가 체념의 밑바닥에 퍼질러 않아 있을 때, 내 삶에서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버려, 더 이상 그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비로소 하느님께서 등장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인간은 정말 의지할 대상이 아니로구나, 철저히 깨닫는 순간 하느님께서 다가오십니다. 하느님의 힘이 부서진 내 삶 위로 건너오십니다.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는 1994년 사제품을 받고 영성신학 전공으로 로마 살레시오대학교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서울 대림동 수도원 원장, 수련장 및 대전 정림동 수도원 원장, 서울 관구관 원장, 부관구장, 관구장 등을 역임해 왔다. 현재 태안 내리공동체 원장 겸 살레시오 피정센터 담당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