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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by 파스칼바이런 2021. 12. 3.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 소개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

 

 

반갑습니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현재 학다리 성당 공동체에서 사목하고 있는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입니다.

 

먼저 빛고을 지면을 통해 교구 신자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룰 내용들이 여러분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길 희원합니다. 성경 공부 관련 원고 청탁을 받고서 여러분과 무엇을 나눌지 고민해 봤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논문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연구했던 사도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서간이었습니다. 외국에서의 쉽지 않았던 유학 생활은 제 개인적으로 이러한 만남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그동안 준비해왔던 것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갈라티아서는 바오로 4대 서간 중 하나로 그리스도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켈트족이 (오늘날 터키 수도 앙카라를 중심으로 하는) 갈리아 지역에 이주해 살았고,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제국이 이 지역에 소아시아의 남쪽 지방을 편입시켜 갈라티아 속주를 만들었습니다. 바오로는 선교 여행 중 이 지역을 방문하여 여러 신앙 공동체를 세웠는데(4,13 참조), 갈라티아서는 이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서간입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인들이 자신이 전해준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그토록 빨리 돌아선 것을 질책(1,6)하며 그들의 믿음을 바로잡아 주고자 합니다. 갈라티아서에는 바오로 신학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핵심 개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가령, 할례, 율법, 의로움, 자유, 영과 육 등입니다. 성경 해석자들은 이 개념들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론(理論)들을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바오로 신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과 논쟁하면서 정립해 왔습니다. 따라서 갈라티아서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갈라티아서를 다루기 전에 입문 형식으로 몇 가지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을 읽는 법, 갈라티아 공동체가 처한 문제, 편지의 전체 구조 등이 있으며, 다음 주부터 차례대로 다루겠습니다. 갈라티아서에 대한 전체적 시각은 편지의 각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후 갈라티아서를 면밀히 읽어가며 바오로가 편지 수신인인 갈라티아인들에게 의도한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울러 갈라티아서에서 등장하는 바오로 신학의 주요 개념을 정리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갈라티아서 뿐만 아니라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는 바오로의 다른 서간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21년 10월 17일 연중 제29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 방법론 1

 

 

첫 시간은 바오로 서간을 읽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근래 성경 연구의 가장 큰 이슈는 ‘독자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실재했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지를 썼고, 그 편지는 실제 공동체에 전해져 읽혔을 것입니다. 현대 성경 해석학은 이러한 역사적 실재 독자와 다른, 바오로의 편지 내에 존재하는 독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를 ‘이상적’(혹은 ‘내적’, ‘함축적’) 독자라 일컫는데, 바오로가 편지를 쓰며 염두에 둔 독자의 모습을 지칭합니다. 가령, 연애편지를 쓴다고 가정해봅시다. 필자는 관심 있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단어와 문장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써 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필자는 편지를 받아 읽는 이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읽어 주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필자가 편지를 쓰며 의도했던 이미지가 바로 ‘이상적’ 독자입니다. 이것은 편지의 실제 수신자와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지를 받아 읽는 이는 필자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바오로 연구학자들은 ‘이상적’ 독자와 ‘실제’ 독자를 구분해야 하며, 갈라티아서를 ‘이상적’ 독자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편지가 쓰여질 무렵 신앙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편지였던 것을 감안하면, 바오로는 분명 ‘이상적’ 독자를 염두에 두며 편지를 정성껏 작성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에 입각하여 갈라티아서를 읽을 것입니다.

 

‘이상적’ 독자 입장에서 갈라티아서를 읽는다고 해서 ‘실제’ 독자, 즉 갈라티아 공동체의 상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갈라티아서는 바오로의 문학적 창작물이 아닌 실재했던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쓰여진 글입니다. 그러기에 갈라티아 공동체의 역사적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은 또한 중요하고 필요한 작업입니다. 다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주된 사안은 방법론입니다. 과거의 성경 연구는 갈라티아서에 등장하는 몇 단어(예 : 할례와 육 등)에만 치중하여 역사적 상황을 추정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 그 자체의 메시지가 보다 충실히 읽히기 위해서는 먼저 그런 표현들이 서간 내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티아서는 당시 신앙 공동체의 문제점을 묘사하기보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상적’ 독자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갈라티아인들의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바오로의 논증 방법을 살펴본 후, 갈라티아 공동체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3) 방법론 2

 

 

지난 시간에 언급한 ‘이상적’ 독자 이론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능’ 중심으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독자를 생각하며 특별한 표현을 서간에 담았습니다. 각 표현마다 바오로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메시지가 서간 내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가령, ‘바보야!’라는 표현을 어떤 이는 어리석고 못난 친구에게, 또 어떤 이는 사랑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친구의 무지(無知)를 깨우치는 것이라면, 후자는 평소와 달라진 친구의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같은 표현도 그 기능을 알 때 메시지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갈라티아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표현이 지닌 기능을 살펴봐야 합니다. 기존 바오로 연구학자들도 서간의 기능적 측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아 율법 준수의 삶을 받아들이려는 갈라티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이기에 갈라티아서는 교육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 공동체를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입니다. 사실, 갈라티아서를 보면 긍정적 명령 형태(설득형)와 부정적 명령 형태(만류형)가 번갈아 사용되고 있습니다(5,1.13.16 참조). 바오로가 사용하는 명령형 동사가 단순히 가르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갈라티아인들을 만류, 설득하며 새로운 앎으로 이끌고 있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간 각 부분이 독자에게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오늘날 서간을 읽는 우리 모두가 ‘능동적 독서’에 초대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상적’ 독자 입장에서 서간을 읽는다는 것이, 혹여 지금 우리의 신앙 생활과 무관하지 않나 싶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서간의 메시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상적 독자 입장에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서간을 읽을 것이 아니라 바오로가 독자에게 바라는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얻게 된 시간의 메시지는 전혀 다른 삶의 자리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 독자에게도 다양한 해석으로 풍요로운 신앙의 결실을 맺게 해 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간을 읽는 과정은 자신을 ‘이상적’ 독자 입장에 위치시키는 것에서 출발하며, 독서 중 발견한 메시지를 각자의 삶에 적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2021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4) 방법론 3

 

 

바오로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사학(修辭學)에 대한 선이해도 필요합니다. 수사학이란 사람을 설득시키는 기술에 관한 학문으로서 그리스 로마 시대 학생들의 필수 과목 중 하나였습니다. 서간을 읽다 보면 바오로도 이 설득의 기술을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 시간에는 바오로가 사용한 수사학적 방법 두 가지를 다루겠습니다.

 

첫째, 바오로는 주제 제안(propositio)과 논증(probatio) 구조로 편지를 썼습니다. 두괄식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글은 읽기 쉽습니다. 두괄식 문단이란 주장하는 말을 문단 앞쪽에 두는 구조입니다. 독자는 첫 문장을 읽음으로써 문단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게 됩니다. 바오로도 편지를 쓸 때 두괄식으로 표현하였고, 이를 ‘주제 제안’이라고 말합니다. 즉, 주제 제안은 핵심 내용이며, ‘논증’은 그 주제 제안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독자는 바오로의 이러한 논증적인 서간을 읽어가며 주요 메시지를 파악합니다. 따라서 바오로 서간을 읽을 때 어느 문장이 주제 제안에 해당하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바오로는 논증을 위해 세 가지 수단, 곧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를 사용합니다. 로고스는 내용 자체의 논리, 파토스는 듣는 이의 감정, 에토스는 말하는 이의 도덕성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참조). 바오로는 자주 독자들의 이성(로고스)에 호소합니다. 공동체의 과거, 현재 삶을 바라보게 하고(갈라 3,1-5),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갈라 3,6-14; 4,21-31), 인간 삶의 기본 원리에 근거하여 편지를 씁니다(갈라 4,1-7). 이러한 내용들은 편지 내용이 지닌 논리적 측면으로서 메시지의 진실됨을 드러냅니다. 바오로가 듣는 이의 감정(파토스)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독자들을 “형제 여러분”(갈라 1,11; 3,15; 4,12 등)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에 맞게 행동하게 하는 마음을 부추깁니다. 바오로는 또한 자신의 도덕성(에토스)에도 근거해 설득합니다. 과거에 그는 율법 준수에 철저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장엄하게 고백합니다(갈라 1,14; 2,19-20). 이로 인해 독자는 바오로의 메시지에 깊은 신뢰감을 갖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읽어가며 이러한 수사학적 방법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2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5) 갈라티아 공동체의 문제

– 할례, 율법

 

 

갈라티아 공동체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대립법(Antithesis)이라는 수사학적 기법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립법이란 두 사물을 구분하여 양립 불가능함을 표현하는 기술입니다. 가령, 호리바 마사오의 「일 잘하는 사람, 일 못하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은 세상 사람을 두 부류로 구분 지어 대립시킵니다. 책을 처음 집어 든 이들이 제목을 읽고, 일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마음을 갖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책 제목에 사용된 수사법이 바로 대립법입니다. 바오로도 이러한 수사법을 사용하여 갈라티아인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갈라 5장에서 바오로는 갈라티아인들에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5,2);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5,4). 바오로는 할례 · 율법 문제를 독자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할례와 율법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갈라티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할례를 통한 율법 준수의 삶이 병행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어 이미 신앙인이 되었습니다(3,26-29).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율법을 지키고자 합니다(4,21; 5,4). 더군다나 선동자들은 갈라티아 공동체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6,12-13). 이에 갈라티아인들은 필요함을 느껴 할례를 공동체 의식으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5,2). 할례와 율법 준수가 이미 시작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양립할 수 있다는 확신이 갈라티아인들의 마음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의 이러한 확신을 지적하는 데에는 할례 · 율법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이해시켜 줍니다. 바오로도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율법을 인용하고 있습니다(3,6-14; 4,21-31; 5,14 참조). 그럼에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할례를 통한 율법 준수의 삶이 병행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갈라티아인들이 외적 규정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례와 율법만이 믿음의 삶을 이끌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에 따르는 믿음의 순수함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할례 · 율법을 따르는 삶이 병행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 -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연재하는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는 교황청립 성서대학교에서 성서학(신약)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학다리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다.

 

[2021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광주주보 빛고을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