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파스카 축제를 지내다 (탈출 12,1-13,16)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이집트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 안으로 그들은 야곱이 이집트에 정착한 지 430년 만에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스물아홉 번째 순례 여정은 이집트의 고센 지방에 사는 히브리 사람들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각자가 히브리인의 가정에 초대받았다고 상상하여 봅시다. 오늘 밤 이집트인들에게는 엄청난 비극이 발생할 것입니다. 파라오의 맏아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감옥에 있는 포로들의 맏아들과 맏배까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탈출 12,29-30). 바로 그 순간에 히브리인들의 가정은 파스카 축제를 지냈습니다. 그들은 첫째 달, 곧 우리 달력으로 3~4월에 해당되는 니산 달 10일째에 일 년 된 양이나 염소를 마련해 두었고, 14일 저녁 해 질 녘에 그것을 잡았습니다. 짐승의 피를 받아 각자의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두었고, 고기는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었습니다. 마짜라고 불리는 누룩 없는 빵은 베두윈들이 먹는 피타 빵과 비슷합니다. 쓴나물은 유다인들의 전통에 따라 파슬리나 셀러리, 로메인 상추 또는 고추냉이 잎을 먹습니다. 그들은 이 밤에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하기에 허리에 띠를 매고 신을 신은 채로, 지팡이를 쥐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 음식은 오직 이날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만 먹을 수 있어서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립니다. 이날 그들이 나눈 만찬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제사로,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은 거르고 지나가셔서 그들을 구해주셨음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앞으로 그들은 해마다 주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며 이 예식을 행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밤새 그들을 이끌어주셨기에 그들은 이 예식을 행할 때마다 밤을 지새울 것입니다(탈출 12,42).
파스카 축제는 주님의 구원과 깊은 연관이 있는 축제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이들만이 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탈출 12,43-49에 따르면, 할례를 받지 않은 외국인은 파스카 예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집트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게 된 것은 엄청난 특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여한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이 백성이 역사상 최초로 지내게 된 것이어서 아직 외국인은 이 제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이 생기기 이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유목민의 관습 중의 하나인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를 초봄에 주님께 봉헌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탈출 13,1-2.11-16), 또한 봄철에 새로운 곡식을 수확하기에 앞서 낡은 누룩을 태워 없애고, 햇곡식으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어 먹던 축제(탈출 12,15-20; 13,3-10)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상적인 절기와 관련된 축제가 이집트 탈출 사건이라는 구세사와 연결되면서 축일의 의미가 신학적으로 재해석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은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시간과 공간이 됩니다.
그런데 왜 성경의 저자는 이집트에서 일어난 열 번째 재앙에 관해 서술하면서, 이 사건의 앞과 뒤에 파스카 축제에 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일까요? 성경의 저자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징벌하는 심판과 이스라엘의 해방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었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하였으므로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을 심판하는 일에 전혀 가담할 수 없었습니다. 곧 그들의 해방은 폭력이나 무력을 통해 쟁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어린이처럼 히브리인들의 해방을 기념하는 이 잔치에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참여합시다.
[2021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가톨릭마산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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