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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보아즈(룻 2~4장)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5.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보아즈(룻 2~4장)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보아즈는 유다의 7대손 살몬과 이방인 여성 라합(여호 2장) 사이에서 난 아들로, 다윗 임금의 증조부가 되는 인물입니다(마태 1,5). 보아즈는 판관 시대에(룻 1,1)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유력한 “재산가”(2,1)였습니다. 성경에서 “재산가”(깁보르 하일)라는 표현은 힘센 용사나 권력가나 큰 부자를 가리키는데요, 보아즈는 부유한 지주이면서도 겸손하고 소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확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2,4)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2,14) 타작마당에서 함께 잠을 청하는 등(3,7) 작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는데요, 보아즈의 이런 모습은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셨던 예수님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마르 2,15-17).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수확을 하다가 지나온 곡식 묶음이나 열매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규정이 있습니다(신명 24,19-21). 그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으로 남겨두라는 뜻인데요, 보아즈는 자선을 명하는 이러한 계명에도 충실했습니다. 그는 율법상 ‘이스라엘 회중에 들 수 없는 모압족’(신명 23,4) 여인이었던 룻이 자신의 타작마당에서 이삭을 주울 수 있게 허락해 주었을 뿐 아니라, 종들에게 아예 보리 다발에서 이삭을 빼어 흘려주라고 말해둘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이였습니다(룻 2,8-9.15-16). 허기진 이방인 과부 룻에게 빵과 물을 손수 내어주는 그의 모습은(2,9.14)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45)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고엘(“구원자”)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가문의 권리와 의무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는데, 고엘은 가난한 친족이 빚으로 땅을 팔게 되었을 때 대신 값을 치르고 땅을 되돌려 준다거나(레위 25,23-28), 그가 가난 때문에 종이 되면 그 빚을 갚아주어 해방시켜 주는 보호자였습니다(25,47-55). 또 어떤 이가 자식 없이 죽으면, 혈통상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의 아내와 결혼하여 가문을 이어주는 것도 고엘의 역할이었지요(신명 25,5-10). 보아즈는 한밤중 타작마당에서 그의 잠자리의 발치를 들치고 누운 룻을 탐하지 않고, “내 딸아”라고 부르며 보호를 약속합니다(룻 3,10-13). 룻의 명예를 지켜주고(3,14) 넉넉히 곡식을 쥐어주며 시어머니 나오미까지 배려하는 그의 모습은(3,17), 하느님께서 주신 힘과 재물을 올바로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보아즈보다 더 가까운 구원자가 있었지만, 그는 나오미의 밭을 사더라도 룻과 혼인하여 낳은 자식에게 그 땅을 거저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손해가 두려워 구원자 의무를 거절합니다(4,1-10). 그에 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여 구원자로서의 의무를 받아들인 보아즈의 모습에선 구세주 예수님의 모습도 엿보이네요.

 

초대 교회의 여러 교부들(세비야의 이시도루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은 구원자 보아즈와 이방 여인 룻의 결합을, 교회의 신랑이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만민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신부로 맞아주신 구원 사건의 예표로 해석했습니다. “그분 안에(보) 힘(아즈)이 있다.”는 뜻의 이름 그대로, 보아즈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오직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확신 속에 작고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고 구원하는 삶을 살았던 예수님의 조상입니다. 우리도 그의 모범을 따라 나의 가족과 친지들의 삶과 신앙을 보살피며 구원을 돕는 이 시대의 보아즈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2022년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 대구주보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