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 하느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시고 인간이 협력하다 제1독서 : 느헤 8,2-4ㄱ.5-6.8-10 / 제2독서 : 1코린 12,12-30 복음 : 루카 1,1-4; 4,14-21 가톨릭신문 2022-01-23 [제3279호, 17면]
거대한 신전이나 경전 자체보다 하느님 말씀에 집중한 이스라엘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면 주님 말씀은 완전하게 실현될 것
1. 말씀의 힘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 경전이 존재하고, 경전을 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에서는 경문을 기록한 마니차(法輪, prayer wheel)를 만들고 반복적으로 돌리면서 부처님 말씀의 덕을 보고자 합니다. ‘다루초’나 ‘룽타’라고 불리는 경문기(經文旗)를 높이 매달아서 더 먼 곳까지 공덕을 퍼뜨리려고도 하지요. 비록 경전을 읽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그 성스러운 힘을 이용해 보려는 행위들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경전 자체의 성스러움을 강조하고, 경전을 지니거나 의례에 사용해서 어떤 결과를 얻고자 하는 심성은 종교 세계에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종교 경전이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경전에 기록된 말씀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일 것입니다.
경전 내용이 실현될 때, 사람들은 그 진실함에 탄복하고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말씀의 위력은 눈에 보이는 신전이나 경전 자체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2. 성전에서 성경으로 오늘 첫째 독서로 봉독되는 느헤미야서는 그런 말씀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구약의 신앙 선조들은 당시 주변 문화와 달리 신전을 짓고 신상 앞에 예배를 드리는 일에 처음부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화가 남긴 거대한 신전과 신상들은 오늘도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구약의 족장들, 곧 아브라함(창세 12,7; 8,13), 이사악(창세 26,25), 야곱(창세 33,20) 같은 이들은 신전 대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바쳤습니다.
소박한 흙더미 위에서 하느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주위 나라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거대한 신전을 지어 자기 능력을 뽐내고 인간적 성취를 과시했다면, 이스라엘은 작은 제단에서 경배를 드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지요. 훗날 이집트 탈출과 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성막과 성전이 신앙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배 시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신앙의 중심에 둡니다. 광야 생활과 유배 생활이라는 악조건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거창한 성전을 짓지 못했어도, 그 때문에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가 갈라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분 말씀을 경청하고 따름으로써 신앙을 충실하게 지킵니다. 보이는 성전에서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신앙의 중심이 옮겨가는 이 변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 첫째 독서입니다.
제임스 티소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독서에 등장하는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이 파견한 유다 총독이라는 지위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을 복원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성의 복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건축물보다 하느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백성들의 신앙을 복구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첫째 독서는 백성들이 하느님 말씀에 감동하며 율법을 알아듣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세우는 일에 마음을 온통 빼앗기기보다 하느님 말씀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전과 신상 앞에서 주술적 행위를 통해서 신을 조종하려 했던 주위 민족들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숙해 갑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을 세우고 자아도취에 젖는 대신, 하느님의 말씀과 율법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겸손한 백성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답송은 말씀으로 살아가는 백성의 노래를 전합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3. 성경에서 삶으로 신앙의 중심이 말씀으로 옮겨가는 이러한 변화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자에 이르러 절정을 이룹니다. 루카복음에서 세례를 통해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첫 활동은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은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고 선포하시고 그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의아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고 앞 못 보는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도 여전한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실 수 있을까?’하고 말이죠.
단언컨대, 말씀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억압받는 우리를 해방시키고 가난한 이들을 구하시기 위해 필요한 일을 이미 다 이루어주셨다는 의미에서 말씀은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에서도 말씀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아직 그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해방된 사람으로서 온전히 품격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에서만 옳습니다. 요컨대, 하느님은 이미 당신의 말씀을 이루셨고, 우리가 이루어진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완전한 실현을 보도록 하신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우리 협력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제2독서)로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우리를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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