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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유딧기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5.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유딧기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유딧기는 토빗기와 마찬가지로 성경 목록 구분에 따르면 역사서로 분류되지만 실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닙니다. 1장 1절에 보면 “대성읍 니네베에서 아시리아인들을 다스리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 제십이년의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을 아시리아 임금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네부카드네자르는 BC 604년부터 BC 562년까지 바빌론을 다스렸던 임금입니다. 유딧기 저자의 착오라고도 할 수 있지만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다윗 왕조의 멸망을 가져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을 혼동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딧기는 토빗기의 경우처럼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역사 소설입니다.

 

유딧기는 유딧이라는 과부가 전쟁 중에 홀로 적진에 가서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이야기입니다. 간략하게 유딧기의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1-7장은 소설의 갈등 단계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닥친 위기가 등장합니다. 아시리아 임금인 네부카드네자르는 아르팍삿 임금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페르시아의 모든 주민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서쪽 지방의 민족들에게 사절을 파견하여 동맹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시리아 임금의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아르팍삿 임금과의 전쟁을 승리로 끝낸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홀로페르네스 장군을 시켜서 서쪽 지방을 토벌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해안 지방의 민족들이 차례로 굴복하였고 홀로페르네스는 유다 땅에 도착했습니다.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재건하여 하느님께 봉헌한 예루살렘 성전을 걱정하였으며, 그 결과 성전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계곡마다 고지대를 선점하고 장애물을 설치하는 등 방어 진지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참회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제후들과 총독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하였고, 암몬인의 수령이었던 아키오르가 홀로페르네스에게 이스라엘인들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어놓습니다. 아키오르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홀로페르네스는 아키오르를 붙잡아 유다 진영으로 넘겨버립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배툴리아를 포위하였고, 이스라엘인들은 완강하게 저항하였습니다. 배툴리아 주민들 가운데에서 홀로페르네스와 평화조약을 체결하자는 의견이 터져 나왔지만 우찌야는 닷새 동안만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그 뒤에도 하느님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이 주어지지 않으면 항복하자고 백성들을 설득합니다.

 

8-14장은 소설의 해결 단계로 유딧이 등장해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유딧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과부였으며 남편 므나쎄와 사별한 뒤 매일을 경건하게 살아가던 여인이었습니다. 게다가 빼어난 용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지혜와 용기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닷새 동안 기다려보고 그래도 하느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항복하자는 주장을 반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날짜를 정해놓고 하느님이 도와주시는지를 보는 것은 하느님을 시험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유딧은 하느님을 향한 굳은 믿음만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련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부르시기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유딧은 앞장서서 머리에 재를 뿌리고 자루 옷을 입은 뒤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지켜달라는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난 뒤 자루옷을 벗고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적장 홀로페르네스가 있는 적진으로 향합니다. 빼어난 미모로 홀로페르네스의 환심을 산 유딧은 술에 취해 잠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버린 뒤 배툴리아로 돌아갑니다.

 

15-16장은 소설의 결말 단계에 해당합니다. 배툴리아로 돌아온 유딧은 적장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틈타 아시리아 군대를 물리칠 방안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유딧이 계획한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홀로페르네스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유딧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느님께 찬양을 바친 뒤 온 백성의 사랑 속에서 여생을 보냅니다.

 

유딧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5장 17-18절을 보면 “그들이 저희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한, 불의를 미워하시는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번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길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많은 전투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이국땅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그들의 성읍들은 적군에게 빼앗겼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 충실한 삶을 살았는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유딧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신의 능력은 수에 달려 있지 않고 당신의 위력은 힘센 자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히려 미천한 이들의 하느님, 비천한 이들의 구조자, 약한 이들의 보호자, 버림받은 이들의 옹호자,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이십니다.”(9,11)라는 유딧의 고백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유딧기에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는 신명기 신학에 기초해서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욥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선적으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유딧은 과거와 달리 자신들은 지금 우상을 숭배하지도 않았으며, 하느님을 저버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딧은 “모든 것이 그러하더라도 주 우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도 시험하고 계십니다.”(8,25)라고 말하면서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하느님께서 더 높은 차원의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자 하시는 배려와 자애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유딧기는 페르시아와 시리아 왕조의 박해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에게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커다란 힘을 주는 역사 소설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해와 탄압에 맞서 싸웠던 유다 마카베오 가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마카베오 상·하권과 함께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던 책입니다. 유딧기의 저자는 유딧처럼 이교도인들의 탄압 가운데에서도 신앙의 선조들이 물려준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