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갈릴래아 바다 김명숙 소피아 박사
예수님 공생애의 중심지는 갈릴래아 바다입니다. 성경에는 킨네렛 바다(여호 12,3), 겐네사렛 호수(루카 5,1), 티베리아스 호수(요한 6,1)로도 지칭되지요. ‘킨네렛’은 히브리어 ‘키네렛’을 옮긴 말입니다. 바다 모양이 ‘키노르’, 곧 수금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집니다. ‘겐네사렛’은 키네렛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말로 보이고요. 때로는 갈릴래아 바다가 호수로 일컬어지니 민물인지 짠물인지 헷갈리실 텐데요, 정답은 민물입니다. 그것도 수면 고도가 해저 200m보다 아래인, 세상에서 가장 낮은 호수입니다. 고대에는 이곳이 이스라엘의 동쪽 국경이었고요(민수 34,11), 근대에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의 경계였습니다. 1967년 3차 중동 전쟁 뒤 그 경계가 골란 고원으로 바뀌기 전까지는요. 수원은 이스라엘 가장 북쪽에 자리한 헤르몬 산입니다. 헤르몬의 물이 갈릴래아 호수를 채운 뒤 요르단 강을 타고 사해까지 흘러갑니다.
그런데 갈릴래아 호수는 왜 ‘바다’라고 칭해졌을까요? 아마 규모가 커서 바다처럼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호수 둘레는 50km, 최고 수심은 40m 가량입니다. 바람이 불면 파도도 칩니다. 요르단 강처럼 ‘가늘고 귀여운’ 물줄기만 대하다가 갑자기 이런 호수를 맞닥뜨렸으니 바다처럼 거대해 보였겠지요.
이런 큰 물은 고대인들에게 이중적 의미를 갖습니다. 물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죽음의 세력으로도 여겨졌습니다. 큰 물이 지닌 파괴력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됩니다. 구약성경에는 다른 예도 나오는데요, 하바 3,8에는 하느님이 바다에 분노하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시편 93,3-4에는 물이 목청을 높이지만 주님께서 더 엄위하시다는 찬양이 나옵니다. 두 구절 모두 ‘물이 경계를 넘어 뭍을 침범하려 해도 주님께서 막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도 비슷한 예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꾸짖으시자 호수가 잠잠해진 일(마르 4,39)입니다. 호수를 꾸짖다니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또한 큰 물, 곧 죽음의 세력을 주님께서 통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사건(마태 14,22-33)도 비슷하게 풀이할 수 있지요. 바로 죽음의 세력을 밟아 제압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을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으로 찬양한 욥 9,8이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갈릴래아 바다의 등을 밟으심으로써 당신의 신성과 권능을 드러내신 셈입니다. 이에 제자들이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4,33) 하고 고백한 것도 그들이 큰 물에 대한 전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물을 제압하는 분이니 성자이심이 틀림없다고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는 터전이 된 갈릴래아 바다는 이후 그리스도교를 품은 보금자리도 되어줍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비밀리에 예배 드릴 때 첫 ‘집 교회’(Domus Ecclesiae)가 되어준 곳이 바로 이 바닷가에 자리한 베드로의 집이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2월 6일 연중 제5주일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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