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연중 제8주일 - 이기심 버리고… 나를 반성하고 남을 사랑하라 제1독서 집회 27,4-7 / 제2독서 1코린 15,54-58 / 복음 루카 6,39-45 가톨릭신문 2022-02-27 [제3283호, 19면]
참된 인간·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마음속 죄악과 위선 떨쳐버리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쇄신하길
회개와 성찰은 나 자신부터 먼저 시작돼야
형제들과 함께 이웃 본당 판공성사를 도와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제가 형제들에게 그랬습니다. “오늘만큼은 날이 날인만큼 사제로서 패션에 신경들 좀 써주세요!” 그랬더니 형제들이 즉시 이구동성으로 반격을 하시더군요. “아니, 그런 말씀 하실만한 분이 그런 말씀하셔야지요. 신부님, 구두 좀 보세요! 하얗게 소금끼가 남아있는데, 또 구두 신고 바다 다녀오셨군요. 그리고 바지 뒤쪽에도 흙이 잔뜩 묻어있는데요.” 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오늘 복음 말씀이 어찌 그리 뼈저리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복음 6장 41~42절)
참 인간이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반성하고 진단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과오와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질책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도 권리도 없습니다. 이웃을 저울질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마땅합니다. 회개와 성찰은 나 자신부터 먼저 시작돼야 합니다. 날카로운 비판 전문가들은 이웃을 비판하기에 앞서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웃의 결핍을 바라보고 필요한 조언을 건넬 때는 다른 무엇에 앞서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웃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구해야 마땅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도 않고 파악하려고도 애쓰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려고 기를 씁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달라도 너무 다른 위선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도 치명적인 병을 지니고 있기에 자기 한 목숨 살리기도 힘든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진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진리에 대해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참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자질이 없는 지도자, 능력이 없는 지도자, 무엇보다도 교만한 지도자, 이기적인 지도자가 남을 가르치려 든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일이 다시 또 없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가르침 받는 사람이나 둘 다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누구나 세상 앞에서 지도자입니다.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쇄신, 쉼 없는 자기 계발과 자기 연마는 지도자인 우리에게 필수적인 노력입니다.
제임스 티소 ‘장님을 이끄는 장님’.
첫째가는 인생 과제, 나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
유다 문법에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과장법이 자주 사용되곤 했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과장법을 많이 사용합니까? 좀 더운 걸 가지고 ‘불볕더위’니, ‘용광로 속’이니, 하며 과장합니다. 묵직한 우럭 한 마리 잡으면 ‘팔뚝만하다’고 과장합니다. 키가 좀 크면 ‘전봇대 같다’고 과장합니다. 좀 보고 싶은 걸 가지고 ‘보고 싶어 죽겠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꽤 센 과장법을 사용해서 남의 결점에 목숨을 걸기보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숙하고 반성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들보란 건물의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르는 나무(crossbeam)를 의미합니다. 혼자 들기 버거운 무겁고 큰 나무토막입니다.
아무리 우리 눈이 왕방울만큼 크다 하여도 길이가 몇 미터나 되는 들보가 우리 눈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몸길이보다 더 긴 들보가 어떻게 우리 눈 속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신 것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들보입니다. 몇 미터뿐만 아니라 수십 미터나 되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허물들, 결점들, 잘못들, 죄악들, 오류들, 언행의 불일치, 그릇된 지향, 하늘을 찌르는 위선, 극도의 이기심을 본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눈을 가지고 있고, 대단한 안목을 지니고 있고, 상대방의 내면을 꿰뚫을 수 있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을 못 볼 때가 많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나를 조금 밖에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만 아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고 오직 주님만이 아시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 같은 경우 예수님을 박해하기 이전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대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올곧다고 생각했습니다. 티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거침없고 당당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뒤로 크게 변화됩니다. 자신 안에 어두운 부분이 그토록 많았다는 것을 알게 돼 깜짝 놀랍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다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하느님을 박해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를 파악하는데 100% 실패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게 됩니다.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다 틀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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