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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에페소 교회 원로들과 작별 인사를....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25.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에페소 교회 원로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밀레토스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 사모스섬에서 본 소아시아 땅. 오른쪽 끝 뒤에 밀레토스가 있다.

 

 

바오로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자 에페소를 지나쳐 밀레토스까지 내려옵니다. 그곳에서 바오로는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 원로들을 불러오게 합니다(사도 20,17). 에페소는 밀레토스에서 북쪽으로 40㎞ 남짓 떨어져 있어서 바오로가 보낸 사람이 에페소로 가서 원로들을 소집하고 원로들이 밀레토스로 오기까지는 사나흘은 걸렸을 것입니다.

 

에페소 교회 원로들이 밀레토스에 올 때까지 바오로는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요? 밀레토스는 에페소가 아시아 속주 주도로서 성장하기 전에는 이 일대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고, 바오로 사도 당시에도 소아시아 지방 서남 해안의 주요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이 올 때까지 밀레토스 시내 여기저기를 둘러보지 않았을까요? 아마 유다인 회당도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밀레토스 모형도

 

긴 작별 인사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이 오자 바오로는 길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사도 20,18-35). 작별 인사는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한 일과 관련됩니다(사도 20,19-21). 바오로는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면서 겸손하게 주님을 섬겼을 뿐 아니라,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알려주고 가르쳤으며, 유다인과 그리스인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증언했다고 자신이 한 일을 원로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둘째 부분은 바오로 자신의 현재 상황과 심경에 관한 일입니다(사도 20,22-24). 바오로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에 가는 도중입니다. 거기에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바오로는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주셨다”라는 말로 자신이 시련을 겪을 것임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도 “달길 길을 다 달려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 있다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다”라고 자신의 단호한 심경을 밝힙니다.

 

셋째 부분은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하는 당부입니다(사도 20,25-35). 바오로는 원로들이 감독이 된 것은 그들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으로 세우셨기 때문이라면서 원로들 자신과 양 떼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위험을 경고합니다(사도 20,28-30).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이라는 위험과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위험입니다. 곧, 교회 밖에서 오는 위험과 교회 내부에서 생기는 분열의 위험입니다.

 

 

- 에페소 원로들이 바오로와 작별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

 

이런 위험들을 경고한 후 바오로는 원로들에게 어떻게 양 떼를 보살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사도 30,31-35). 그것은 바오로가 그들과 함께 3년 동안 지내면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타이른 것을 명심하여 늘 깨어 있고,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굳게 의탁하며, 모든 면에서 바오로 자신을 본받는 것입니다. 특히 바오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는 일 없이 자신과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애써 일하여 손수 장만했음을 강조하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을 명심하라고 당부합니다.

 

작별 인사를 마친 바오로는 무릎을 꿇고 에페소 교회 원로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원로들은 “아무도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사도 20,26)이라는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아파 모두 흐느껴 울면서 작별 인사를 한 후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합니다(사도 20,36-38).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바오로의 당부

 

사도행전이 전하는 대로라면, 작별 인사를 마친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의 배웅을 받으며 배를 타고 밀레토스를 떠나고 그것으로 바오로와 밀레토스의 인연은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그 후에 다시 밀레토스에 갔었다고 추론할 근거가 신약성경의 다른 대목에 나옵니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바오로는 트로피모스가 병이 나서 밀레토스에 남겨 두었다고 하는데(2티모 4,20), 트로피모스는 바오로가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마케도니아에서부터 바오로와 동행한 에페소 사람으로서 밀레토스를 떠난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트로피모스도 함께 있었습니다(사도 20,4; 21,29). 이를 이유로,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 원로들을 만났을 때 말고도 그 이후에 다시 밀레토스를 방문했으리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병이 나서 밀레토스에 남은 트로피모스가 예루살렘에서 바오로와 함께 지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서입니다.

 

바오로가 밀레토스를 한 번만 방문했는지 아니면 두 번 방문했는지와 상관없이, 병이 난 트로피모스가 밀레토스에 남아있었다면, 당시 밀레토스에는 트로피모스를 돌볼 신자가 있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복음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밀레토스가 에페소에서 멀지 않은 큰 도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선교 활동을 벌였던 3년 동안 아니면 그 이후에 밀레토스에도 복음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바오로가 직접 밀레토스에서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기에 사도행전은 작별 인사 외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325년에 개최된 제1차 보편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 밀레토스의 주교가 참석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밀레토스 교회는 6세기에는 대교구가 되고 12세기에는 관구장좌 교구로 승격합니다. 다만 서방 로마 교회가 아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동방 교회 관할이었습니다. 그러다 도시의 쇠퇴와 더불어 교회도 차츰 빛을 잃어 오늘날에는 이름만 있는 명의 교구로 남아 있습니다.

 

 

- 밀레토스 야외 극장에서 바라본 밀레토스 유적지

 

 

- 밀레토스의 유다인 회당이 있던 지역(우)

 

밀레토스는 길이 2.5㎞의 반도에 건설된 도시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굴곡이 심한 강물의 침식 작용으로 퇴적물이 쌓이면서 항구 기능을 점차 상실해 갔습니다. 그래도 15세기까지는 항구 도시로서 명맥을 이어갔으나 이후 황무지처럼 버려지면서 마침내 흙 속에 파묻힌 도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해안에서 10㎞ 가까이 떨어진 내륙으로 변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오늘날 밀레토스를 찾으면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을 비롯해 대규모 시장터, 기원전 63년 해적을 퇴치한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를 기려 세운 고대 항구 근처의 기념물, 유다인 회당 터, 비잔틴 시대 교회 유적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유적들은 고대 도시 밀레토스의 모습과 함께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바오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여러분 자신과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늘 깨어 있으십시오.”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의지하십시오.”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이르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밀레토스에서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한 바오로의 당부는 2000년이 지난 오늘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당부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