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에스테르기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에스테르기는 토빗기, 유딧기와 마찬가지로 소설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책입니다. 또한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미드라쉬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에스테르기는 창세기 37-50장에 등장하는 요셉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스테르기의 작중 배경은 페르시아 시대이지만 유다인들이 극심한 박해를 받는다는 내용이 암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작중 연대와 저작 연대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는 유다인들에게 관대하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스테르기는 유다인들에게 혹독한 박해를 가했던 시리아 안티오코스 4세 시대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테르기의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1-3장은 소설의 갈등 단계로 모르도카이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모르도카이는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왔다가 수사 왕국에서 일하게 된 디아스포라 유다인입니다. 그는 용 두 마리가 서로 싸우려고 대치하자 모든 민족들이 의로운 민족을 치려고 전쟁을 준비하였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의로운 민족이 하느님께 탄원하자 큰 강이 생겨나고 빛과 해가 솟아올라 핍박을 받던 이들이 거드름을 피우던 자들을 집어삼키는 꿈을 꿨습니다. 모르도카이가 꿈을 꿨을 당시는 크레스크세스 임금 시절로서 당시에 모르도카이는 임금을 헤치려던 두 내시의 음모를 발견하였고 그 공으로 임금의 큰 신뢰를 얻게 됩니다. 이를 질투한 하만이 모르도카이와 그의 민족을 없애 버리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따라서 모르도카이가 꿈에서 본 두 용은 모르도카이와 그를 해치려는 하만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은 재위 3년에 큰 연회를 베푸는데 그는 왕비의 미모를 과시하고자 연회에 나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이를 거절하였고 이에 화가 난 임금은 왕비를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모르도카이의 양녀였던 에스테르가 새로운 왕비로 뽑힙니다. 반면 당시 재상이었던 하만은 자신과 대립하고 있었던 모르도카이와 모르도카이와 같은 민족인 유다인들을 모두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들이 자신들만의 법을 지킬 뿐 페르시아 임금의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빌미로 해서 아다르 달(음력 2월) 13일에 유다인을 몰살하라는 임금의 명령서를 받아냅니다.
두 번째는 4-7장으로서 소설의 해결 단계에 해당합니다. 여기서는 에스테르가 개입해서 모르도카이와 유다인들을 하만의 음모로부터 구해내고 하만이 몰락하게 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유다인들을 몰살하라는 어명에 관한 소식을 듣고 소식을 듣고 모르도카이와 유다인들은 울고 탄식하며 크게 통곡하였습니다. 자신의 내시인 하탁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들은 에스테르는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임금의 명 없이 임금에게 나아가 하만을 위해서 연회를 베풀어주기를 청합니다. 임금은 연회에서 에스테르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고 에스테르는 자신과 자신의 겨레가 하만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살려달라고 청합니다. 궁지에 몰린 하만은 결국 에스테르에게 애원하면서 목숨을 구걸하지만, 임금은 하만을 죽입니다.
마지막으로 8-10장은 소설의 종결 단계로서 행복한 마무리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여기서는 푸림절에 대한 기원이 주된 주제로 등장합니다. 하만이 처형된 다음 에스테르는 임금에게 유다인들을 몰살하라는 어명을 취소해줄 것을 청하고, 임금은 이를 허락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죽이기로 했던 아다르 달 13일에 오히려 자신들을 미워하던 자들을 제압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만의 열 아들을 비롯해서 많은 원수들이 살해되었습니다. 모르도카이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매년 아다르 달 14일과 15일에 푸림절을 지내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0장에서 모르도카이가 꾼 꿈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면서 에스테르기는 끝이 납니다.
이처럼 에스테르기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굳게 믿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서 투신하는 신앙인의 참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배 상황, 그리고 유배 이후 식민 통치 기간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에스테르기가 성경 목록으로 정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그랬던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테르기 본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가 보고 있는 에스테르기는 총 274절로 이루어진 칠십인 역본입니다. 이는 167절로 이루어진 에스테르기 히브리어본에 하느님의 주권과 율법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107절을 보태서 작성된 것입니다. 에스테르기 히브리어본에는 하느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에스테르기의 주된 인물인 에스테르와 모르도카이 역시 어떠한 종교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에스테르기 히브리어본에는 종교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도카이가 에스테르를 설득하며 “왕궁에 있다고 모든 유다인들 가운데 왕비만 살아남으리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그대가 이런 때에 정녕 침묵을 지킨다면, 유다인들을 위한 해방과 구원은 다른 데서 일어날 것이오. 그러나 그대와 그대의 아버지 집안은 절멸하게 될 것이오. 누가 알겠소? 지금과 같은 때를 위하여 그대가 왕비 자리에까지 이르렀는지.”(4,13-14)라고 한 말과 하만의 아내 제레스가 하만에게 “모르도카이가 유다족 출신이라면, 이제 그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대감은 그에게 대적할 수 없을뿐더러, 그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6,13)라고 말한 것들을 보면 비록 명시적으로는 하느님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위기에 개입하시어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믿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국수주의적 태도와 이방인을 향한 배척 또한 에스테르기를 정경으로 받아들이기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며,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순수성을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했습니다. 에스테르기에 자리한 국수주의적 태도와 이방인을 향한 배척의 태도를 이러한 점에서 설명 가능합니다.
유다교와 개신교는 히브리어 본문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동방 정교회는 칠십인역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은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칠십인역 추가본을 제2경전으로 해서 에스테르기 전체를 정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 칠십인역본에 추가된 것은 절 표시 옆에 ○로 표시해놓았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3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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