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환 시인 / 나비와 은하
여름날 오후, 하늘 캄캄해지고 후드득 비 쏟아진다 먼 데 하늘이 우르룽거리다가, 번쩍 번개 친다
빈방에 홀로 앉아 제미니 망원경이 포착한 우주 사진을 본다 100억 광년 저쪽의 은하들이 목화솜 같다 121억 광년 저쪽에 있는 퀘이사* 에서, 깜빡 조는 듯한, 흰 빛이 온다
희끄무레하고 안개꽃 같은 나선은하 흥분한 듯 불그스레하게 번져 있는 원반은하 대질량의 별이 태어났다가 죽어가는 밀집은하군 들여다보며 숨 막힌다.
막힌 숨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니, 비 그친 허공에 나비 난다 나비는 비틀거리지만, 주저앉지 않는다 목화솜 같고 물비늘 같고 서산 갯벌 같은 마스크 쓴 세상도 주저앉진 않겠지 비틀거리면서, 흔들거리면서 100억 광년 저쪽으로 막힌 숨 내보낼 뿐
*퀘이사(Quasar) :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되는 거대 발광체.
- 시집 <나비와 은하> 2022, 도서출판 도훈 -
조창환 시인 / 이런 세상 1
- 오늘 확진다 몇 명이유? - 천 명? 이천 명? - 사망자는? - K방역 덕분에 세상은 태평해요 수심가 조로 웅얼거리며 입마개 안으로 고인 침을 삼킨다
외지고 쓸쓸하고 무거운 응달 단청 다 날아간 내소사 처마 끝 같은 허공 막막한 그늘이 마른 시래기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 컹컹 울리고 영월 청령사 터 오백나한 중 제일 못생긴 얼굴 하나가 콩 꽃처럼 웃다가, 다시 찡그린다
이런 세상 사는 일은 눈물 엉긴 검은 빵 씹는 것 같다 철문 근처에서 날두부를 입에 넣는 만기 출소 복역수를 부러워하며 달력을 찢고 있는 무기수 같다
- 시집 『나비와 은하 2022, 도서출판 도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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