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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한라 시인 / 곳물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15.

2014년 제주일보 시조 지상 백일장 장원 작품

장한라 시인 / 곳물질

 

 

깊숙이 더 깊숙이 허공 향한 맨발이다

님 오신 날 기다려 큰 전복은 감추었지

바다 밭 새벽안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덮는다

 

물질하러 육지로 떠돌며 살았네

본조갱이 차면서 쑥으로 수경 닦고

수평선 아득한 세계

해녀는 눈이 열 개다

 

하늘이 여는가 별자리 바닷길

서방대신 이 바다 곳물질도 고마워라

눈 감고 빛줄기 찾는

숨비소리 이만 리

 

*곳물질 : 물질이 서툰 어린 해녀나 늙은 해녀들에게 지정해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가까운 바다.

 

 


 

 

장한라 시인 / 추사가 그린 수선화

 

 

모진 운명 모진 세월 꿈인가 생인가

모슬포 칼바람에 죄인이 웬말인가

뒤뜰은 살얼음천지

마음은 고향천리

 

돌담에 기대어 잦은 기침 달래며

위리안치 살다보니 벼룩도 내 친구

눈보라 휘날리는 밤

소쩍새 우는 듯

 

새봄이 오려는가 바람마다 꽃향기

눈 녹일 해배기별 아지랑이 솟는가

수선화 선녀의 환생

유장한 여명이여

 

 


 

 

장한라 시인 / 추상秋霜

 

 

가을인가 그리움이

기다림을 불러 모아

단풍이 서릿발에

쓰러지는 낙엽이더니

가을이 깊어갈수록

억새꽃이 야위네

 

어제 저녁 내린 비로

오늘은 물안개

달을 이고 청둥오리

떼 지어 나는데

그리움 허무는 동안

물소리만 깊어라

 

 


 

장한라 시인

부산에서 출생. 1985년 김남조 시인의 사사를 받으며 시 입문. 2015년 첫 시집 『즐거운 선택』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9년 디카시집 『새벽을 사랑한다면』 상재.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수혜, 2019년 부산펜문학상 작가상 수상. 『부산펜문학』 편집장,  시전문지 『시와편견』 편집장. 도서출판 『시와실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