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 시인 / 아버지의 못
전쟁과 혁명을 좋아하던 아버지 군복을 벗자 떠돌이 도편수가 되었다 생생한 못 하나면 전국 지도에 방점 찍던 아버지 이제는 고층아파트 벽에 걸린 액자 속에 산다 그래도 한시절 떠돌이 도편수로 이름은 날렸는지 주막집 여자에게 돈만 떼이고 나를 얻은 아버지 그 뜯어내기 어려운 생은 못질하고 대패질하시는지 액자 속에서 노랗게 늙어버렸다 남의 가슴에 못질하면 니 가슴에도 못이 박히는 거여 대낮에도 액자 속에서 잔못질처럼 중얼거리는 아버지 반평생 남짓 못질로만 살았을 것인데 그래도 무슨 못이 그리 남은 것인지 당신 손으로 꽝꽝 박은 관속으로 떠나던 아버지 꽃상여 메고 가는 아들딸들도 다 다른 구멍에 박아서 자식끼리도 가슴에 대못을 박게 하던 아버지 이제는 못 박힌 액자 속을 떠나시는지 벽에 걸린 헐거운 못이 떨어져 내렸다
송유미 시인 / 석남사 사미니 -해덕 스님에게
꿈속까지 젖어 드는 물소리 물이 되어 흐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밤 누가 찾아온다면 구름이 되자고 하나 바람이 되자고 하나 속세에 두고 온 집이 그립다. 세속에 두고 온 거울이 그립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적멸에 들지 못하는 개 짖는 소리 까칠한 독경 소리에 삼킨다 깎아도 다시 솟아나는 검은 머리털 번뇌는 파르르 강아지풀처럼 일어나 야단법석, 말매미 울음소리에 지워진다 바람 소리 스치기만 해도 감성은 면도날 혹여 나그네라도 찾아온다면 물처럼 살자고 할까 바위처럼 살자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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