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분임 시인 / 몸의 기원
나사*가 달이 양수처럼 품은 물을 발견했다는 뉴스를 듣는 저녁 툭, 바닥으로 떨어진 서랍 손잡이 애벌레 같은 나사를 조이다 보면 우화羽化를 꿈꾸는 내 겨드랑이에도 문득 날개 한 쌍 돋아날 것 같은데 둥실, 떠오른 역마살이 무중력 오랜 잠의 가장자리에 발끝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기 달의 치마폭 적막만이 어슬렁거리는 밤 쉬이 잠들지 못한 물방울 하나가 떠돌이 물방울 하나를 끌어들여 꿀벌처럼 뜨겁게 잉잉대다가 툭, 뱉어낸 꽃 한 송이 어머니의 어머니를 만날 것도 같은데
전생이 끊고 나온 탯줄 끝 벌 한 마리 날아들지 않아 얼어붙은 씨방 속 그리움의 더듬이 금 가는 소리 들리는데 미처 사타구니를 빠져나오지 못해 발원의 골짜기를 거스른 눈물이 결빙에서 풀려나 별로 깜빡이는데
조여지지 않는 서랍의 나사처럼 생각이 헛도는 밤 양수 검사하듯 찔러 넣은 로켓에 텅 비어버린 자궁 하나 둥실 떠오르는데
우화가 끝나지 않은 행성 돌아갈 내 방이 아직 둥글고 따뜻한데
*나사 (NASA) : 1958년에 미국의 우주 개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하여 설립된 정부 기관
월간 『월간문학』 2022년 4월호 발표
최분임 시인 / 허기에 관한 보고서
눈 내리는 고비사막 무리에서 쫓겨난 지 오래인 듯 듬성듬성 털 빠진 늑대 한 마리 뚱뚱해지는 지평선을 질질 흘릴 때
너를 비우기 위해 떠나온 이곳 들이치는 공복에 휘청거린다
게르를 읽는 늑대 언덕 아래 봉긋한 한 끼를 향해 얼어붙은 털을 보초처럼 흔들어 깨운 후 두고 온 새끼들이 메아리치는 목울대를 훌쩍 뛰어넘어 채 핏기 가시지 않은 양 한 마리 물고 나온다
너를 잃은 내 입맛도 짐승의 습성으로 돌아오고 있는지 흩날리는 눈발을 경계도 없이 물어뜯는다
뼈째 씹히는 사막 맹렬한 외로움을 제물로 차린 늑대 헛묘 같은 뱃구레를 향해 긴 울음의 제祭를 올리면 식솔들에게 전하는 기별 핏발 선 눈동자가 쓰고 있다
제의祭儀를 마친 비린내 뚝 떼어 음복처럼 나눌 새도 없이 눈보라가 한 줌 털을 물고 저만치 달아나면 뚝 뚝 핏자국을 따라 몰려드는 검독수리 떼
삶을 저만치 뼈다귀처럼 던져두지 못하는 땅 끝내 물러설 수 없는 허기가 남은 한 끼처럼 어슬렁거리고 있다
-반년간 『용인문학』 2021년 상반기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여명 시인 / 수탉 외 1편 (0) | 2022.11.19 |
---|---|
박주택 시인 / 시간의 동공 외 1편 (0) | 2022.11.19 |
송유미 시인 / 아버지의 못 외 1편 (0) | 2022.11.18 |
권운지 시인 / 갈라파고스 외 1편 (0) | 2022.11.18 |
심재휘 시인 / 첫사랑 외 2편 (0) | 2022.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