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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31.

[말씀묵상]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연중 제19주일

제1독서 지혜 18,6-9 / 제2독서 히브 11,1-2.8-19

복음: 루카 12,32-48

가톨릭신문 2022-07-31 [제3305호, 19면]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

결코 흔들리지 않는 위대한 유산

불안 떨치고 깨어있는 삶 살아야

 

 

 

윌리암 홀맨 헌트 ‘세상의 빛 : 문 두드리는 그리스도’.

 

 

작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이 40%를 넘었습니다. 2인 세대까지 포함하면 63.9%에 이릅니다. 아파트 거주비율도 50%를 넘어섰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 과반수는 대를 이어가며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보다 아파트 사정에 맞춰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웃사촌이 어떻게 사는지 훤히 알던 시대, 담벼락 너머로 관심과 정과 오지랖을 주고받으며 살던 시대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이런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개인의 사생활과 권리가 더 존중받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지도 늘어나지요. 조금만 ‘튀는’ 일을 해도 ‘누구 집 아무개가 어떻더라!’는 수군거림을 듣던 때에 비하면 무척이나 자유로운 삶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뿌리 없는 외톨이로 전락할 위험이 따라옵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풀 한 포기처럼 세상사에 떠밀리다가 마음 둘 곳 하나 없이 홀로 남는 미래가 많은 이들의 코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여행도 돌아올 집이 있어야 즐거운 법인데, 기댈 곳도 뿌리도 없는 삶이 어찌 불안하고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유다인들은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삶을 살면서도 뿌리를 잊지 않도록 애를 썼습니다. 어지간한 건국신화나 기원설화 치고 ‘신의 후손’ 운운하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며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점을 유달리 강조해 왔습니다. 이런 선민사상은 매사 그렇듯 긍정과 부정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택된 백성이라는 의식이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집단적 자긍심을 일으키는 반면, 나 귀한 줄만 알고 남 귀한 줄 모르는 배타적 사상으로 변질되어 차별과 억압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 백성이라는 이름은 유다인이라는 좁은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게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받은 모든 이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신자를 새 사람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 성령의 성전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65항) 그래서 교회는 연중 제19주일의 독서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는 위대한 유산을 상기시키고, 하느님께서 우리 존재의 근본이심을 생각하게 합니다.

 

먼저 첫 번째 독서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뭇 사람들 사이에 이뤄지는 계약과 달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첫째 독서인 지혜서 구절은 하느님께서 당신 계약의 백성을 얼마나 굳건하게 지켜주는지 보여주신 역사적 사실들을 상기시키는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이집트 탈출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하느님은 당신을 믿고 길을 떠난 이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지켜주신다는 이 계약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축복과 유산을 나눠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에서 시편 작가는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시편 33)이라고 환호합니다. ‘우리 도움, 우리 방패’가 되어주시는 하느님께서 ‘죽음에서 목숨을 건져주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시니,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립니다. 뿌리와 근본을 잊고 괜한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지요. 이 불안을 잊으려고 많은 이들이 세상의 재물에 의지하고 더 많은 힘에 매달립니다. 그러니 첫째 독서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누리는 특권을 제대로 알고 음미하라고 촉구합니다. 사라지고 말 세상 것에 매이지 말라고 합니다.

 

두 번째 독서에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모델로 제시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양자로 받아들여지고,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상속을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같은 조상을 둔 이들 안에 흐르는 공통의 유전자와 같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히브 1,1)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당신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셨으니,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는 곧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 사람,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요 공동 상속자라는 확증이 믿음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받을 상속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 12,32) 그분은 우리를 ‘작은 양떼’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받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성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왕국을 주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심으로써 우리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버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이자 정점입니다.

 

덧붙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 깨어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깨어있는 삶은 한 순간도 쉴 수 없이 팽팽하게 긴장하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깨어있는 삶이란 우리가 누구인지 의식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받을 유산을 아끼고 지키는 삶을 말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상속을 받는지 잊지 않는 사람은 재물이나 권력에 취하지 않고, 불안에 넋을 빠뜨리지도 않습니다. 기다림과 설렘 속에 신명 나게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 그런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