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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혜 시인 / 대관람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20.

김신혜 시인 / 대관람차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대관람차야

이곳을 환하게 비추지

 

거대한 링이 빛을 내며 천천히 움직이면

끝없이 회전하는 공동묘지

죽은 사람들은 한 칸씩 저기 묻힌다는데

 

마을 사람들을 전부 실어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대관람차는 크고 아름다워서

누구나 한 번쯤 하염없이 올려다보곤 해

 

대관람차 주변에는 유채꽃이 가득하다

진동하는 향기가 진동하는 기계음이

덜컹거림이

자꾸만 나를 아득하게 해

 

어떤 여자는 저 안에서 아기를 낳았대

잠시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문을 열고 나온 이는 없었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대관람차의 되새김질이 시작되면

유채꽃 향과 피 냄새가 진동하는데

 

어느 날 나는 대관람차를 탔지

구름은 거품이 되어 흐르고

거대한 링은 나를 천천히 실어 나르고

 

나는 창문에 기댄 채

대관람차의 품속에 안겨 있었지

이곳에 고여 있는 영혼들은 즐거운 양

나를 휘저어 놓고 있었어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내리라는 사람이 없었다

 

-<시인시대> 2021, 여름

 

 


 

 

김신혜 시인 / 웃음삭제

 

 

선풍기를 들여다보면

이가 시리다

 

날개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식욕이 왕성해

 

회전하는 날개가

나의 미소만을 본떠서 가져간다

 

나는 더 이상 웃지 않고

들판을 달린다

 

입을 벌리고 기계음을 낸다

 

잠자리와 눈이 마주친다

잠자리의 눈은 선풍기 뚜껑 같고

바람이 거세지고

 

회전하는 날개에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머리카락

 

곤충이 먹다 남긴 머리들은

내가 곱씹던 곤충의 맛

 

들판 꼭대기에는 크고 아름다운 풍차가

제각각으로 돈다

 

-『딩아돌하』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김신혜 시인

1991년 서울 출생. 상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졸업. 2018년 《시인동네》 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