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혜 시인 / 대관람차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대관람차야 이곳을 환하게 비추지
거대한 링이 빛을 내며 천천히 움직이면 끝없이 회전하는 공동묘지 죽은 사람들은 한 칸씩 저기 묻힌다는데
마을 사람들을 전부 실어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대관람차는 크고 아름다워서 누구나 한 번쯤 하염없이 올려다보곤 해
대관람차 주변에는 유채꽃이 가득하다 진동하는 향기가 진동하는 기계음이 덜컹거림이 자꾸만 나를 아득하게 해
어떤 여자는 저 안에서 아기를 낳았대 잠시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문을 열고 나온 이는 없었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대관람차의 되새김질이 시작되면 유채꽃 향과 피 냄새가 진동하는데
어느 날 나는 대관람차를 탔지 구름은 거품이 되어 흐르고 거대한 링은 나를 천천히 실어 나르고
나는 창문에 기댄 채 대관람차의 품속에 안겨 있었지 이곳에 고여 있는 영혼들은 즐거운 양 나를 휘저어 놓고 있었어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내리라는 사람이 없었다
-<시인시대> 2021, 여름
김신혜 시인 / 웃음삭제
선풍기를 들여다보면 이가 시리다
날개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식욕이 왕성해
회전하는 날개가 나의 미소만을 본떠서 가져간다
나는 더 이상 웃지 않고 들판을 달린다
입을 벌리고 기계음을 낸다
잠자리와 눈이 마주친다 잠자리의 눈은 선풍기 뚜껑 같고 바람이 거세지고
회전하는 날개에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머리카락
곤충이 먹다 남긴 머리들은 내가 곱씹던 곤충의 맛
들판 꼭대기에는 크고 아름다운 풍차가 제각각으로 돈다
-『딩아돌하』 2020-여름호 <신작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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