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희 시인 / 겨울산
겨울산은 생각을 맨몸으로 만든다 껍질이 살처럼 터져 고랑을 이루는 나무 붉게 물이 올라 젓가락처럼 가지 끝이 단호하게 뻗어 있는 나무 잎과 꽃이 사라진 맨몸 나무에게 봄을 가져오라 보챈다 봄이면 꽃에 홀려 맨몸의 겨울나무를 잊는다 껍질이 눈에 띄는 나무 가지 끝이 붉게 뻗은 특별한 나무 시절 따라 눈길 끄는 것만 궁금해 한다 생각이 옷 입을 날이 없다
이숙희 시인 / 아귀 입맛
아귀는 입을 닫기도 전에 벌린다 삼켜진 생선은 다시 나오지 못한다
그물에 걸린 아귀는 파도를 삼키듯 입을 벌린다 뱃속에 들어오는 먹이는 없고 새우도 뺏기고 가지미도 빼앗긴다 독 있는 톱니 이빨에 힘을 싣고 장갑 낀 손톱도 뚫을 듯 실눈을 찡그리며 위협한다
어부는 도마도 필요 없이 여유롭다 가위로 턱을 단번에 오려낸다 꿈틀거림과 싱싱한 맛은 노동이 주는 쾌감
인간의 입맛은 씹어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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