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시인 / 독주
먼 나라의 방언이 울창하여 접혀 있던 맑은 귀들이 목련처럼 피어난다 여기쯤이라고 누군가 속삭이는데 완성되지 않은 하늘이 폭발한다
파지처럼 눈발이 날린다 미완의 골짜기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순백의 기억을 따라간다 쪼그리고 앉아 불을 피우던 갈라지고 터진 손 무게가 , 사라진 네가 꿈의 문고리를 따고 낯선 별의 층계를 밟고 올라간다
하늘이 문을 닫는다 눈 먼 새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어두운 거리에서 말이 채찍을 맞아 비틀거린다 미친 사내가 말을 부둥켜안고 울다가 저녁이 되고 너는 , 북쪽의 골짜기에서 어둠을 쪼며 희미하게 깜박거린다
얼음처럼 갈라지는 얼굴에 잔금 무성한 실뿌리들 살아야지 죽음보다 더 시퍼렇게 죽음보다 더 단호하게
힘주어 견디고 있던 검은 돌이 터지고 심장이 퍼덕거린다 손끝에 남아 발언하는 빛의 온기들
꽃의 방향이 지워지고 낯선 나라의 골목에서 죽은 여자가 걸어 나온다 수치와 모멸의 자갈밭을 지나서 검은 머리칼이 불붙어 타오르는 백 년 후의 거리를 지나서
월간 『문학사상』 2022년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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