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시인 / 쇠바퀴 소리
비 오는 소리 여울물 소리 노래 선율로 들리던 모든 것이 시간가는 소리로 들린다.
기차가 굴속을 지날 때 세상이 끝나고 바퀴소리만 남듯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이젠 시간가는 소리뿐
우리 모두 멈추지 않는 시간 열차에 갇혀 검정 구렁 향해서 굴러가고 있다. 바퀴 소리 요란하게 고장도 없이 호스음도 없이
유종호 시인 / 충북선
충북선은 내 마음의 자연사 박물관 출발의 설레임은 언제나 종점의 허망으로 끝나고 달려와 사라지는 풍경에 끌리어 혼자만의 낮잠을 즐겼지. 카이저 수염의 백작인가 인단 광고판이 보이면 유치하게 부자가 되고 싶었지 타개진 가마니로 몸을 감싸고 화물차에 실려가는 장정들 반역의 꿈은 사납고 무서워 무시로 먼 산이나 바라보았지 정하, 오근장, 도안, 소이 이국정서의 낯선 매혹에 팔랑개비 나그네로 살고 싶었으나 지갑이 얇아서 책장이나 뒤졌지 선불 맞은 맹수의 비명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 아니 나고 들리느니 이제는 점잖은 디젤의 기적일 뿐이나 충북선은 여전히 3등 노선 내 고독의 자연사 박물관 잃어버린 시간의 잔설이 푸르구나
유종호 시인 / 나 있음의 둥지
양지 아닌 응달에 둥실 떠 있는 까치집 나 있음의 둥지는 바람 잘 날 없는 흔들 요람
눈에 뜨이는 곳이라야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저 높이 떨고 있는 잔별과 초승달이 있을 뿐
거푸거푸 호호 입김을 불며 마음의 군불 지피며 지피며 어설픈 둥지에서 나 또한 흔들리며 기다리리니
유종호 시인 / 남몰래 흘린 눈물 -젊은 벗에게
남 몰래 흘린 눈물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불빛 없는 뒷골목에서 분해서 불끈 쥔 주먹으로 남 몰래 훔친 눈물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이르지 못한 그리움이 벼랑 끝 꽃잎 되고 싶던 날이 깨어나지 말기를 간구한 밤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별을 그리다 스러진 꿈이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 문득 먼 산 바라기의 적막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세상은 갈수록 수미산 남 몰래 흘린 눈물이 어찌 내게만 없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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