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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성호 시인(청주) / 로로와 의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22.

김성호 시인(청주) / 로로와 의자

 

 

풀려버린 낯빛이고 로로와 의자에 앉은 맨다리이다.

종이를 만지는 손길이고 로로와 의자에 앉은 빼곡한 몸통이다.

어둠은 푹신하게 지나간다.

어둠은 조용하게 지나간다.

어둠은 로로와 의자를 지나간다. 로로와 의자는 어둠을 바라본다.

 

풀려버린 살갗이고 멎으러 오는 노래의 너비이다.

로로와 의자에 앉은 희박한 연기이고 그걸 나는 목말라 한다.

오늘의 새가 운다.

새가 운다.

오늘의 새는 계속해서 나의 의자를 울도록 둔다.

낮은 인물이고 낮은 차양이며 낮은 주단. 새가 운다.

잡아 달라고. 잡아 달라고.

 

풀려버린 꺼풀이고 로로와 의자에 잠기는 작품과 지대. 그걸 내리고 내린다.

그걸 떨리게 바라보는 문 뒤의 첫 현실이다.

로로와 의자에 앉아 보는 지난 입술이고

엎드리는 거실.

로로와 의자. 웅크리게 된다.

 

로로와 의자에 앉아 생각하는

로로와 움직임들. 부딪힘들. 일어오는 소리.

분명치 않은 거리. 두 호주머니.

오랜 시간.

로로와 의자.

하늘의 점이 파묻히는 게 내게는 쉽게 상황으로 특징지어진다.

 

풀려버린 무리이고 로로와 의자의 모형. 실내를 걸어간다.

나의 꼭 맞는 의자이다.

풀려버린 뺨이고 곡선을 잡는 정오이고 오로지 가라앉는 네모 상자이며

나의 꼭 맞는 의자이다.

어둠을 천천히 기어가는 딱딱함이다. 딱딱함을 천천히 기어가는 밋밋함이다.

눈을 감고 싶다. 눈을 뜨고 싶다.

 

로로와 의자를 보는 나의 의자이다.

로로와 의자에 앉는

나의 꼭 맞는 의자이다.

바람이 오고 햇빛이 오고

잔잔한 나무 의자이다.

나의 꼭 맞는 의자이다.

 

내가 바라보는 나의 텅 빈 의자이다.

로로와 의자를 싣고 가는 속도이며

로로와 의자가 있는 비행기이며

로로와 의자에 앉는 필기구와 옷걸이.

그곳에 앉는 나의 깊숙한 등허리이다.

 

브루노 슐츠.

실비아 플라스.

두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김성호 시인(청주) / 하얗다

 

 

광장은 하얗다

지하는 하얗다

가녀린 여자는 하얗다

시인가 보다

저녁은 부드럽다

저물녘은 아름답다

문을 열어 본다

동작에서 멈추리라

그리하여 모르는 새 걷히리라

모든 것은 시작되고

모든 것은 끝난다

나는 매혹을 느낀다

오늘의 백지인가 보다

그리하여 변명은 시작된다

또한 사라지는 사람

사라지는 저물녘

아름다움을 몰아내고

침묵을 도용하기 위해

가장 하얗다

나를 도용하기 위해

무너지는 운명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사라질 때에 떼 지어 오는

두근거림이 가장 욕되다

오늘인가 보다

허물어지는 나의 오늘보다

더욱 하얗다

 

 


 

김성호 시인(청주)

1987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 졸업.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