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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신 시인 / 간지러운 쌀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25.

이신 시인 / 간지러운 쌀밥

 

 

태풍과 땡볕을 길들이던

불굴의 마음 한 자루 잘 받았습니다

청둥오리 정강이를 쪼고

미꾸라지 발가락을 간질이는 흙에서

참새 까치 메뚜기와 투닥거리던

명랑한 착한 녀석들이라지요

물과 흙과 뭍바람들을 버무려

백옥처럼 빚으셨군요

아이들이 별들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시간에

헤아릴 수 없는 순백의 그 사랑

다섯 홉 펄펄 끓어 넘칩니다

 

“쿡쿠~,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이 보내주신 힘들과

당신이 보내주신 한 자루의 휴식이

내 하루의 긴 간지럼을 태웁니다

 

 


 

 

이신 시인 / 낯선 열쇠에 열리다

 

 

전동차에서 열쇠를 주운 밤

귀갓길이 짤그랑거린다

전동차와 나와 길 사이에 어둠이 있고

우리는 서로에게 여닫이 문

서로를 노크하며 여닫고 있다

 

의문의 복도를 걸으며 열쇠를 찾아본다

나는 어디에 그 많은 열쇠를 두고 왔을까

손바닥을 펴자 무거운 허공이 올라앉고

강산이 네 번째 바뀌는 동안

점점 더 많은 문을 달고 있는

손금 속의 길들이 낯익다

 

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문과

찾아가 보지 않았던 열쇠들에 대해

언제쯤 분실신고가 필요해질까

쩔그렁, 전체가 문인 낯선 열쇠에게

문고리 하나 잡혀 있는 밤

빈 방에 주인이 든다

 

2006년 시와창작 1.2월호

 

 


 

이신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96년 호국문예 가작 입선. 2005년 포엠토피아 신인상에 『우산과 유산』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시산맥과 시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