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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수경 시인(보성) / 불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8.

정수경 시인(보성) / 불면

 

 

밤이 빛을 전가하여 새벽은 오고

 

아가리는 탄력적이고 집요해서 빛만큼 강했다 배가 부르면 뱀처럼 스르르 공간을 빠져나간다 간혹 볼록해진 배가 골목 모서리에 걸려 터지기도 했는데 그럴 땐 야광 파편처럼 사연들이 쏟아져 내렸고

 

그걸 알아차린 것은 개와 시인이었다

 

개는 청각으로 그걸 받아 적었다 아주 또렷하게 멍멍멍, 시인은 개 짖는 소리에 리듬을 잃기도 했는데 그래도 필사적으로 기억하려 노력했다

 

필사적이라는 말은 눈꺼풀의 일

 

개는 간혹 토끼잠을 자다가도 새벽의 꼬리를 앞발로 지그시 눌러 밤을 지연시켰다 그래도 시인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뜬눈으로 빛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받아 적지 못한 건 개 때문이라고

 

기분을 전가한 일이 다반사였다

 

-계간 『다층』 2022년 봄호

 

 


 

 

정수경 시인(보성) / 화분

 화분에 구멍이 있군요

 

​ 뿌리는 그 곳에서 왔을까요

 

​ 열쇠로도 채울 수 없는 문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건 화분에

무엇인가를 심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 그러니까 몸에도 문이 있군요

 

​ 입구와 출구가 뒤바뀌는 회전문 같은

 

​ 아시죠?

 

​ 때론 몸도 출구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일탈 하나쯤 간직하고 싶어지는 날은 돌과 고양이가 가득 심어진 화분을 들고 나가죠 빈 몸으로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죠

 문틈으로 파고드는 한 가닥 빛

 그러니까 빛이 빠져나가는 저 문의 틈은

 화분의 구멍 같은 것일까요

 고양이를 심은 화분이라고 불러도 좋겠어요

 구멍이 뚫린 화분

 내 몸에 있는 빛들은

 어느 구멍으로 흘러나가고 있을까요

​​

-제2회 시흥신인문학상 수상작

 

 


 

정수경 시인(보성)

전남 보성에서 출생. 웹진 『시인광장』 제9회 신인상을 톰해 등단. 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회원, 시향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