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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미선 시인 / 캐스터네츠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8.

송미선 시인 / 캐스터네츠

 

 

아프면 이걸 치세요

 

간호사가 캐스터네츠를 들이민다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신호를 보내라고

엄지와 검지를 벌려

왼손에 쥐여준다

치과 의자가 스르륵 젖히고

반 박자 느리게 내가 따라 눕는다

의자는 내 기분 따위에는 아랑곳없다

수술 등 불빛이 부시어 감은 눈 위로

드릴 소리가 내려앉는 듯하다

꽁꽁 언 손끝으로 캐스터네츠를 튕겨보지만

연습인 줄 아는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좀 더 힘을 주어 튕겨봐도 죽을힘을 다해 견디는

 

밤새 다듬고 갈아냈던

몇 마디도 안 되는 문장을 물고 있던 나는

얼굴 가리개를 덮은 채

새벽을 끌어당긴다

말줄임표를 즐겨 쓰던 무책임한 손끝으로

어둠의 촉수를 건드리면

캐스터네츠가 나를 대신해 문장을 삼킨다

 

종이컵으로 입안을 여러 번 헹궈내도

목젖에 걸려있는 말줄임표

 

 


 

 

송미선 시인 / 점

 

 

날개의 방향으로 새점을 치고 기분의 속도에 따라 해석을 달리한다

땀 고인 손을 후우 후 불어가며

입을 가리고 웃는다

생일이 빠져나간 자리에 기일을 들여놓은 뒤

몸이 오케스트라가 될 때를 기다렸지만

심벌즈가 도착하지 않는다

손가락 지휘봉은 이정표로 변하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까만 점들이 숨죽이고 있다

등 뒤쪽만 보일 뿐

사방은 온통 안개속이다

가면을 벗어던진 날이면 부유물처럼 떠오르는 점 점 점

드러나지 않도록 짜여진 점조직

서로를 모른 체하고

심장 대신 부레를 훈련시킨다

번갈아 가며 우리는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고

염소에서 말뚝으로,

츄파춥스를 빨대로,

자주 호칭을 바꾸었다

그럴 때면

불거지던 까만 점들이 귀걸이처럼 달랑거렸다

안개가 걷히기도 전

떠다니던 점들이 그물망을 찢고

모스 부호는 타전된다

 

<경남문학> 2020년 여름호

 

 


 

 

송미선 시인 / 설정

 

 

입을 막기 위해

부리를 꾸욱 눌러 시계 속으로 밀어 넣어요

 

목까지 끄집어 덮을수록 추워지는 이불 속

베개 위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세는데

끼어드는 새소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알람을 설정해 두었나보네요

당신이 머문 적 없는 겨울은 늘 비어 있고

그 위로 눈이 내리네요

당신이 옮겨준 병인데

우리는 병명이 서로 달랐어요

열꽃을 가라앉히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지요

얼음찜질을 하며 보낸 몇 번의 계절이

열꽃의 기울기를 줄여주네요

 

설정해 놓은 대로 한 치 오차 없이 노래 부르는

내가

나도 낯설어요

날아오던 새 한 마리가 창문에 비칠 제 모습이 싫어

비껴가버리네요

배꼽 왼쪽에서 한 뼘 되는 곳을

꾸욱 누르니

숨어 있던 새소리가 꿈틀하네요

 

소리 없이 쌓이는 눈을 위해 새들은

안개로 뼛속을 채운다는데

 

눈이 내리는 날은

병명도 모른 채 날개가 녹는다지요

 

<시와편견> 2020년 여름호

 

 


 

송미선 시인

경남 김해 출생. 2011년 《시와 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다정하지 않은 하루』(시인동네, 2015),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가 있음. 현재 계간 『시와 사상』 편집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