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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영서 시인 / 푸른 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9.

고영서 시인 / 푸른 손

 

 

손 하나 들이밀고 시집 왔니라

너로 허먼 시할애빈디

내게는 영 마뜩찮은 분이었제

아무렴, 글만 아는 집안이래두

풀 한 포기에 베인 손이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열흘을 가야?

논으로 밭으로 내달리다

흰 쌀밥 고봉으로 퍼드리먼

에미 손은 머슴손이어,

오장이 뒤틀리게 사무쳤니라

마당 한 귀퉁이 무쇠솥이 끓는데

어머닌 행주도 대지 않은 손으로

뚜껑을 열고

뜨건 물을 푹푹 퍼 나르시네

 

-『경북매일/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고영서 시인 / 됴화(桃花)

 

 

됴화, 하고 부르면

좋아진다

 

물큰한 살냄새를 풍기며 애인이

저만치서 다가오는 것만 같고

염문 같고

뜬구름 같은

 

해서는 안 될 사랑이 있다더냐

 

농익은 과육의 즙을 흘리며

팔순 노파가 황도를 먹는다

분홍빛 입술 주름이 펼쳐졌다,

오므려지는 사이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부르면 또 금방이라도

서러워지는 이름

 

* 공후인

 

 


 

고영서 시인

1969년 전남 장성 출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기린 울음』 『우는 화살』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출간. 현재 광주전남작가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