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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성신 시인 / 드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9.

김성신 시인 / 드론

어떤 날은 동그랗게 날아야

​나를 빠져나갈 수 있다

비자나무숲 새들도 내 그림자를 돌아가느라

​울음이 한 박자 늦다

​볕 쬐러 산양들이 떼로 몰려왔을 때

​가는 눈 뜨고 주린 배 움켜쥐면

​날아간다, 날기 위해 날아갈 뿐

왜 나는 것들은 꿈이 가벼울까

​앉고 걷고 품어내는 것의 바람은

​이마를 간질이기도 할 텐데,

어제는 닳은 무릎을 편다

​흘러간 노래를 흥얼거린다

​거짓은 비로소 활짝 날개를 편다

​​

내 머리 위로 상상이 겹치면

​세로줄 무늬

​바퀴만 있어

​구름이 정좌로 돌려세운 기차는 직선으로 굽이친다

어떤 날은 슬픔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는

​끌어안는 자세로 잠을 잔다

​지상으로 툭, 떨어지는 한 마리의 공벌레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은

​순한 표정으로 오늘의 해를 띄운다

나는 것들의 소원은 오직 잠든 나와 맞닿는 것

​먼저 뒤꿈치를 든다

바람이 뒤돌아나가고 있다

​​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김성신 시인 / 모든 동물은 전복(顚覆)을 꿈꾼다

 

 

내 목소리를 따라오면 돼 아타카마사막으로 들어갑니다

여명을 찾는 지름길

틈새를 메우려는 적요

거기 근엄한 파수꾼, 굴절이 함께 있어

 

멈춰 서면 떠오르지 않는 집,

아무리 불러도 옆이 생기지 않는 어깨

혼잣말은 발걸음의 기원일까요

오늘과 나는 함께 몸을 말아 허공을 목소리로 키운다

 

절망은 어떤 질문 끝에 낙타와 조우할 수 있을까

눈동자 속으로 몰아치는 먼지구름

밤하늘에 꽂혀 있는 무수한 낱말들이 불려나오고

가깝고 많은,

시작에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를 바람에 휘말리기도 한다

 

시간의 비늘은 견고해

비탈을 달아 올린 날카로운 햇빛들

어떤 얼굴은 서 있을 곳 없어

자주 뒤집어져,

이마 헐고 발굽 가라앉는

 

헛짚던 채찍을 휘두르며

두 눈을 뜬 채

앞발과 뒷발을 동시에 내디디며 걷는다

 

어떤 상처가 소용돌이 하나씩을 만들 때

발자국의 표면에 빼곡이 채워진 돌과 모래들

 

전복(顚覆)은 낙타보다 키 크고 등 높은 동물

함부로, 죽어가던 내가 척추 세우며 올라탈 때

 

 


 

김성신(金星信) 시인

1964년 전남 장흥 출생. 원광대 한문교육학과 졸업.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문학박사).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어 등단. 2016년 생명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