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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중목 시인 / 나의 기도 외 3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2.

윤중목 시인 / 나의 기도

 

 

처음으로 여인의 벗은 몸을 만졌을 때처럼

처음으로 파도치는 바다를 보았을 때처럼

처음으로 백범일지를 읽었을 때처럼

 

다시금 심장의 고동소리가 듣고 싶다

매순간 제발 두근대다 살고 싶다

 

 


 

 

윤중목 시인 / 약속

 

 

그대 떠나는 빈자리에

우리 한 그루 나무를 심자.

센바람에 빛 고운 꿈을

가슴 속 깊이 싶어 간직하자.

그래서 그대 돌아올 먼 날,

궁근 땅에도 잎새 우거진

그 늠름한 나무를 노래부르자.

푸르러진 가슴을 열어 우리

못다 한 꿈을 다시 피우자.

 

 


 

 

윤중목 시인 / 대설大雪

 

 

땅 위에 곤두선 모든 숨붙이들아

하늘의 명령이다

무장해제하라

 

 


 

 

윤중목 시인 / 커피 한 잔

 

 

펄시스터즈라고 옛날에 듀엣 자매가수가 있었는데요

언니는 동아건설 최 회장님의 부인이 되셨고요

지금으로 치자면 아이돌 걸그룹인 셈이었는데요

근데 초대형 히트곡이 〈커피 한 잔〉이었는데요

신중현 씨가 작곡 작사 다 한 노래였구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뭐 이런 가사였는데요

기다림이란 게 데이트하는 거면 설렘이라도 있지요

이게 철석같이 입금하기로 한 돈 기다릴 때는요

그거 받자마자 나도 딴 데 당장 부쳐야 하는데

아 얼마 되도 않는 거

이 시간까지 안 보내고 뭘 하고 자빠진 건지

만만한 NH농협 인터넷뱅킹만요

들어가봤다 들어가봤다 또 들어가봤다

잔액은 달랑 그대로 변동 없구요

노트북 바짝 더 끌어댕겨서

들어가봤다 들어가봤다 또 들어가봤다

채신머리없이 연방 연신 그래봐도요

웬일인지 돈 아직 오지를 않네

이거 정말 내 속을 태우는구려

커피보다 열 배는 더 쓰게요

스무 배 서른 배는 더 쓰리게요

웬일인지 돈 아직 오지를 않네

이거 정말 내 속을 태우는구려

 

 


 

윤중목 시인

1962년 생.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을 졸업. 1989년 제2회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밥격』과 에세이집 『수세식 똥, 재래식 똥』, 영화평론집 『지슬에서 청야까지』 등이 있음.  한국IBM노동조합 제4대 위원장을 지냄. 현재 문화법인 목선재 대표.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