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 시인 / 페루
철조망인지 몰랐다 영토를 긋는 신경질인 줄 알았다 잠깐 기댔을 뿐이다 점점 몸을 파고 들 줄 몰랐다 선회하기에 늦었다 상처에 생살이 돋아난다 다시 바람이 불어와 철조망이 바람 소릴 내면서 생살을 긁는다 이젠 진물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저항하는 만큼 뒤틀린 채 살아가게 만들어졌다 자유는 늘 바로크* 처럼 생겨 먹었다
* 바로크 :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칼어. 르네상스가 지난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의 건축 미술 등의 예술 전반의 특징을 가르키는 말
임지훈 시인 / 쪼그라든 볏
쪼그라든 볏에 매달린 닭이 잠에 겨워 발부리에 걸리는 투명한 가을빛도 버겁다 피기 전에 지는 것을 깨달은 꽃은 독하다 살모사 같이 각이 또렷한 대가리를 꼿꼿이 쳐들고 들국화 한 송이 온 가을을 혼자 지탱하고 있다
겨드랑이에 처박힌 부리 몇은 건성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쇠파리들 낮게 날고 있다 그리움으로 휘몰아치는 갈대밭을 둘러메고 표창같이 날아가 하늘 맨 복판에 꽂혀 가을빛의 경계를 끝없이 밀어내며 날아가는 저건 또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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