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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지훈 시인 / 페루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3.

임지훈 시인 / 페루

 

 

 철조망인지 몰랐다 영토를 긋는 신경질인 줄 알았다 잠깐 기댔을 뿐이다 점점 몸을 파고 들 줄 몰랐다 선회하기에 늦었다 상처에 생살이 돋아난다 다시 바람이 불어와 철조망이 바람 소릴 내면서 생살을 긁는다 이젠 진물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저항하는 만큼 뒤틀린 채 살아가게 만들어졌다 자유는 늘 바로크* 처럼 생겨 먹었다

 

* 바로크 :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칼어. 르네상스가 지난 16세기 말부터 17세기까지의 건축 미술 등의 예술 전반의 특징을 가르키는 말

 

 


 

 

임지훈 시인 / 쪼그라든 볏

 

 

쪼그라든 볏에 매달린 닭이

잠에 겨워

발부리에 걸리는 투명한 가을빛도 버겁다

피기 전에

지는 것을 깨달은 꽃은 독하다

살모사 같이 각이 또렷한 대가리를 꼿꼿이 쳐들고

들국화 한 송이

온 가을을 혼자 지탱하고 있다

 

겨드랑이에 처박힌 부리 몇은

건성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쇠파리들 낮게 날고 있다

그리움으로 휘몰아치는 갈대밭을 둘러메고

표창같이 날아가

하늘 맨 복판에 꽂혀

가을빛의 경계를

끝없이 밀어내며

날아가는 저건 또 뭘까

 

 


 

임지훈 시인

부산에서 태어남. 동아대 졸업. 동아대 신문에 소설 연재. 동아문학상에 시와 수필 당선. 2006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미수금에 대한 반가사유』와 사진시집 『빛과 어둠의 정치』가 있음. 2018년 한국문인협회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