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시인 / 저녁 오마주
저녁 검문소는 속 깊은 울음 끝자락에 있다 터지는 속을 지나고 울음을 통과해야지 나타나는 검문소 나는 검문소 앞에 내용 없이 서서 살아온 날짜들을 세어본다
지독하고 때로는 지루한 낮과 밤들
커다란 편지봉투에 담기고 싶었다 산 채로 어디론가 배달되어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었던 것
저녁은 내게 신앙 기도하고 낮추고 도망칠 수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바람의 유언을 들으며 동절기를 견디곤 했다 유통기한 지난 희망을 안고 살았다 저녁이 더욱 촘촘해지면 물 샐 틈 없는 어둠이 온다 어둠은 저녁의 유언을 밤새 건너편으로 옮긴다
그 건너편 아침이 도착하면 유언으로 읽히는 저녁의 유충들은 햇빛 속에서 반짝인다 다시 저녁이 올 때까지 환한 빛에 자신을 숨긴다 길도 없는 길을 걸어 다시 저녁이 된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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