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옥 시인 / 비싼 외출
실로 오랜만에 집사람이 코 먹은 소리로 외출을 권한다.
꿍꿍이속을 훤히 들여다보고도 뜻밖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뜬 기분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S 백화점 5층 아내의 눈에서 번쩍 섬광이 인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기회를 노렸음이 분명하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옷을 골라 흥정을 끝내고 내 눈치에 염치를 끼워 넣는다.
그러면 그렇지.
옷을 사준 대가로 얻어먹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신경에 화를 꽂는다.
이길옥 시인 / 꽃웃음으로 살다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무료하다고 여겨질 때 그럴 때 다 비우고 꽃 앞에 서보자. 길가의 잡풀이 피워낸 볼품없는 꽃이라도 좋고 기형으로 일그러진 꽃이라도 상관없이 다 비우고 꽃에게 다가가 보자. 거기에 닿으면 거기에 닿아 녹아들면 서서히 무너지는 무너지면서 몽롱하게 취하는 웃음 열반에 들 것이다. 그러다가 꽃이 되어 영원히 꽃이 되어 아름다움을 퍼내는 웃음으로 살 것이다. 짜증이 나고 싫증 날 때 더더욱 확실한 꽃웃음 한 사발 벌컥 마시자.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길옥 시인 /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자기중심적이고 편파적이다. 주관적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 뜻에 상관없는 억지다.
남의 속도 모르고 혼자서 죽어 날뛰는 생떼다.
좋아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고집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알아주지 않는 헛짓이다.
그래도 좋아한다는 것은 뭉클 가슴 뒤집는 설렘이고 하늘에 붕 뜨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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