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영 시인 / 여자
간밤 짙은 살 냄새를 가랑가랑 끌고 와서 물을 긷는 버들 뒤로 아쉬운 듯 밤이 가네 여자여! 푸르게 출렁댔을 젊은 몸의 그 體位여
저 버들에 세를 들면 물 한 동이 얻을 건가 밀폐된 방 어둠 속에 잠만 자는 늙은 사랑 몸 활활 뜨겁던 밤을 잃고 적막하네 내 여자는
한혜영 시인 / 목련
방금 숨거둔 이의 가슴 여며준 듯싶은
손! 저 희디흰 손앞으로 이끌려가
이승에 더럽힌 이마 위에 종부성사를 받고 싶네
한혜영 시인 / 징검다리 건널 때면
토끼처럼 사뿐사뿐 반만 디뎌 건너봐요. 실개천 물소리는 흘러내린 풍금소리 물 젖은/ 조약돌 하나 반짝 눈을 뜹니다.
물빛이 흔들릴라 맘 조리며 건너가요. 말갛게 잠긴 하늘 곱게 씻긴 모래알들 생각은 여울진 물살 산빛 씻겨 갑니다.
송사리 떼 흩어질라 숨죽이며 건너가요. 물방개 잔등 위에 동동 실린 꽃잎 구름 한 자락 헹군 구름도 하늘 싣고 갑니다.
한혜영 시인 / 핸드폰
핸드폰 한 대씩은 새들도 갖고 있지. 지붕 위 새 한 마리 어딘가로 전화 걸면 그 소식 반갑게 받은 짝꿍 하나 날아오고.
핸드폰을 먼저 쓴 건 사람보다 새들이지. 전화선도 필요 없고 돈도 낼 필요 없고 저 하늘 푸른 숫자판 부리 하나면 간단한 걸.
삐룩삐룩 여보세요 또로로롱 사랑해요. 우리 동네 아침 시간 혼선되는 새소리들 그래도 끼리끼리는 척척 듣고 통화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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