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시인 / 수원남문 돌계단 햇살
남창 초등학교 시절 청소당번이 된 우리는 다람쥐 장난하듯 물을 뿌리고 먼지를 털며 다락과 돌계단으로 오르내렸다.
잠시 돌계단에 앉아 우리는 곱은 손을 내밀어 겨울 햇살을 어루만졌다. 손바닥에는 차갑지만 한줌의 햇살이 투명한 물과 같이 고였다.
물고기를 잡듯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던 그날 이후 돌계단에서 빛났던 한줌의 햇살은 내 영혼의 맑은 물이 되었다.
세상 바다 멀리 나갔을 때 거센 폭풍우 불어 닥쳐 흔들릴 때마다 마음속의 그 우물에 담긴 햇살이 항상 초심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월간 『쿨투라』 2022 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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