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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

by 파스칼바이런 2015. 9. 10.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

크리스토포로 데 프레디스

1476년경, 세밀화, 레알레 도서관, 토리노

 

 

 

 

[말씀이 있는 그림] 에파타!

 

15세기 밀라노에서 세밀화가로 잘 알려진 크리스토포로 데 프레디스(Cristoforo de Predis, 1440/1445~86)는 갈레죠 마리아 스포르자를 위해서 ‘요아킴과 안나, 성모 마리아, 예수, 요한 세례자와 세상 종말 이야기’를 세밀화로 제작한다. 각 장면마다 정교하고 장식적인 묘사로 이야기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쳐주시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을 때, 사람들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알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귀를 듣게 해 주시고 입을 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삽화의 가운데 장면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소년과 함께 서 계신다. 예수님의 뒤로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왼쪽에는 두 사람이 치유의 순간을 좀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다. 예수님과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통해 예수님께서 귀머거리를 따로 불러내었다는 성경의 기록을 어느 정도 따르려는 화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어디를 가시든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는 것처럼, 귀먹은 사람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용한 장소를 택하셨을 것이다. 물론 이 삽화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배경 전체가 지극히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이다.

 

예수님의 오른손은 소년의 귀를 향하고 있고, 왼손은 소년의 손을 꼭 쥐고 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 소년에게도 손을 얹어달라고 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다인들에게 손을 얹는 것은 축복의 표시였다. 손을 위에 얹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 뻗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과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만의 손으로 은총을 행하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예수님께 귀머거리를 데리고 와 예수님께 청하는 것까지였다.

 

사람들의 간청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소년의 귀에 손가락을 넣고 계신다. 삽화는 성경을 읽는 것처럼 내용이 쉽게 파악된다. 손가락을 귀에 넣으신 행동은 치료하시겠다는 표현이다. 말 못하는 이들이 수화(手話)로 이야기를 나누듯, 예수님의 손가락을 통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듣게 된다. 예수님의 조심스러우면서도 고개를 치켜든 모습에서 당당함이 보인다. 예수님은 불가능한 일을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뜻만으로도 아주 쉽게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분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님의 오른손에 침을 발라 귀머거리의 혀에 손을 대실 것이다. 침은 고대 사회에서 약품 대용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예수님의 애정 표시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열려라’는 의미의 “에파타!”를 외치신다. 예수님의 간단한 손짓과 말씀 한마디로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이사 35,5)

 

주님, 저희에게도 ‘에파타’라고 외쳐주시어, 당신이 말씀하실 때마다 분명히 알아듣고 바로 말할 수 있도록 하소서.

 

[2015년 9월 6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