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창조하시는 하느님 / 마스터 베르트람 (1379-83년, 오크 나무 위에 템페라와 금, 85x56cm,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하느님께서 ‘바다에는 고기가 생겨 우글거리고 땅 위 하늘 창공 아래에는 새들이 생겨 날아다녀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큰 물고기와 물속에서 우글거리는 온갖 고기와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지어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느님께서 이것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새끼를 많이 낳아 바닷물 속에 가득히 번성하여라. 새도 땅 위에 번성하여라!’ 이렇게 닷샛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께서 ‘땅은 온갖 동물을 내어라! 온갖 집짐슴과 길짐승과 들짐승을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온갖 들짐승과 집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길짐승들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창세기 1장 20-25절의 말씀이다.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온갖 동물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후기 고딕시대 독일의 화가 마스터(거장) 베르트람(Master Bertram, 1340?-1404/15)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권능을 화폭에 담았다. 마스터 베르트람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그의 이름이 1367년부터 함부르크 신문에 거론되고 있으며 그때부터 그가 이 도시의 회화예술을 위한 중요한 리더로 활약했다는 것뿐이다.
그가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지금 거론하는 제단화로, 이는 원래 독일 함부르크의 성 베드로 성당을 위한 것이다. 이 제단화는 성서의 여섯 주제 곧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 카인과 아벨,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 등 선조들, 예수 탄생과 어린 예수 등을 내용으로 한 2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제단화는 종교개혁 때 자행된 성상 파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으며, 1596년 주교의 명령으로 하나하나 분리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1731년 메켄부르그의 그라보 교구 교회로 옮겨졌다. 그래서 오늘날 이 제단화를 그라보의 제단화라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장소를 옮긴 뒤 제단화는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 급기야 1904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조합되게 된다. 그 가운데 ‘동물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형상을 보면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신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실제 인물의 절반 크기로 성부께서 임하고 계신다. 성부 하느님은 전체의 금색 화면에서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고, 붉은색으로 채색한 그의 긴 옷은 넓은 붓질로 두껍고 둔탁하게 그려졌지만 그 미세한 음영의 빛과 미묘한 색깔 톤의 변화로 단정하고 정교하게 보인다. 그의 상대적으로 큰 머리와 좀 엄격해 보이는 용모가 당시 유행하던 섬세한 필치의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고딕 스타일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독일 후기 고딕 표현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지금 두 손을 들어 동물들을 창조하고 계신 권능과 위엄을 표현하기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하느님께서 창조의 행위를 하시는 순간 태어난 새들과 물고기 등 모든 동물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그 하나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아래로부터 수소와 곰, 말과 멧돼지, 당나귀, 수사슴과 암사슴이 있으며, 그 위로는 어린 양과 늑대, 영우와 토끼 세 마리, 올빼미와 날개를 편 박쥐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두 마리의 게와 흉측한 물고기, 긴 코를 가진 동갈치와 철갑상어를 비롯해 잉어가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백조와 수탉과 공작 그리고 검은 방울새 두 마리가 있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온갖 동물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 동물들은 뿔과 터럭부터 이목구비의 생김새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과 색깔이 매우 사실적이다. 일일이 세밀한 관찰과 해부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한 형상이다. 이런 동물의 형상은 하느님의 비사실적이며 모호한 형상과는 대조적이다. 바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곧 인간 세상은 우리 인간의 눈에 드러나는 현실이지만, 이와 달리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하느님의 모습과 하느님의 세계는 관찰과 확인이 불가한 신비로운 세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베르트람은 현실과 비현실의 대조를 통해 창조의 신비를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창조의 형상은 전반적으로 목가적이며 소박하게 묘사되어, 보는 이의 시선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분간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예를 들어 왼쪽 형상에서 늑대가 양의 목을 잔인하게 물고 있는 것과, 오른쪽에서 바다 괴물이 성난 듯이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전에 악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결국 창세기에 나타난 하느님의 품, 곧 천국이 오로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신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화가는 성서의 한 구절을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창조주 하느님의 권능과 창조의 신비를, 또 악의 존재와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사 석사, 파리 3대학교(Sorbonne)에서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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