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에서의 식사 / 카라바조 (1600-1601년경, 캔버스 위에 유채, 196x141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카라바조(Caravaggio, Michelangelo Merisi da, 1572-1610년)는 17세기 유럽을 풍미한 예술 양식인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화가이다. ‘바로크(baroque)’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말인데, 이 말은 당시 사람들이 이 예술 앞에서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했는지를 잘 대변하고 있다.
바로크 예술은 강력한 군주와 교회가 그 중심이 되어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열정적으로 찬양하면서도, 다른 한편 강력한 절대군주의 권위와 명예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이처럼 하느님 찬양과 왕의 권위를 동시에 표현하는 예술 형상이 베르사유 궁전같이 웅장하고 장엄하며 화려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바로크 예술의 근본은 바로 원근법이나 완벽한 인체 표현과 같은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미의 가치에 있었다. 그러나 실제 표현은 이런 규칙에서 벗어난 기괴하고 과장된 형태였다. 즉 균형과 조화라는 르네상스의 조형성을 극복하면서 여러 복잡한 구성을 시도하였고 원근법을 왜곡 응용하였으며, 그림에서의 빛과 그림자의 역할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하는 등 더 강렬하고 극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카라바조의 ‘엠마오에서의 식사(Supper at Emmaus)’는 이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루가 복음 24장 13절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성서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부활하시어 세상에 모습을 보이신 일화 중 하나이다. 낙심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우연히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는데, 이들은 눈이 가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길을 걸으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믿음이 적은 이들에게 성서에 나타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하시고, 저녁식사에서는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들에게 떼어 나누어주셨다. 이제야 이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는데, 이미 예수님의 모습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덕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주님의 부활에 산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카라바조는 이 그림 속에 강렬한 명암과 과장된 단축법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그는 화면의 대부분을 어둡게 처리하고 있으며 예수의 머리와 얼굴을 비롯한 몇 부분만이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단일한 광원에 의해 화면 안 특정 부분은 선명하게, 나머지 부분은 짙은 그림자를 포함하여 매우 어둡게 표현하는 명암법을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 한다. 이 기법은 화면을 역동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예수는 식사의 주빈으로 빵을 축성하고 있다. 가톨릭 성찬전례 때 사제가 행하는 의식이다. 특이한 것은 예수가 수염 없이 매우 젊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품있고 근엄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실제 농부나 어부처럼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묘사는 전통적으로 예수와 그 제자를 그리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방식을 왜곡시켜 표현하는 것이 바로크 예술의 특징인 바, 이는 예기치 못한 생소한 방식을 통하여 그림의 상징적 가치를 높이기 이한 수법이다. 또한 이례적으로 그리스도의 머리위에는 후광이 없다. 다만 그의 그림자가 후광을 대신하면서, 전통적인 사실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제자는 예수와 동행했던 글레오파이다. 그는 예수의 실체를 깨달은 순간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있다. 반쯤 가려진 그의 얼굴은 놀란 표정을 우리의 상상에 맡기면서 그 느낌을 극적으로 몰고 있다. 그림 밖의 빛을 반사하는 팔꿈치의 구멍이 화면에 빛의 효과를 전달하고 있다. 이 구멍은 그의 거친 손과 함께 농부(어부)라는 그의 직업을 암시하지만, 당시 성자를 농부로 표현한다는 일반인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오른쪽의 제자는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있다. 그 벌린 팔의 단축법이 그림에 깊이 즉 입체감을 부여한다. 특히 이 제자는 가슴에 새조개 표식을 달고 있는데, 이 표식은 순례자의 상징으로 이 제자가 곧 순례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오른쪽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은 여인숙 주인이다. 예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있다. 그의 평온한 모습은 그가 빵 축성의 의미를 알지 못함을 뜻하며, 두 제자의 흥분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자는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탁자 위에는 여러 가지 정물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데, 정물의 대가로서의 카라바조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탁자 앞쪽의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광주리는 화면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광주리의 상한 사과와 쪼개진 무화과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는 상징적 과일이며, 석류는 부활을 통해 죄악을 극복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탁자 전경의 빈자리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 속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한다. 가톨릭에서 성체성혈이라 부르는 이것은 그리스도와 일체를 이루며, 이 작품의 중심 테마를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카라바조는 익히 알려진 주제를 관례에 따르지 않는 획기적인 방식을 통해 왜곡시켜 표현함으로써, 그 내용을 보다 극적이며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조형기법은 훗날 렘브란트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예술사 석사와 D.E.A. 과정을 마쳤으며, 파리 3대학교(Sorbonne Nouvelle)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
'<가톨릭 관련> > ◆ 성화 & 이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야곱 / 렘브란트 (0) | 2011.11.25 |
---|---|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 엘 그레코 (0) | 2011.11.25 |
아르노피니의 결혼식 / 얀 반 에이크 (0) | 2011.11.25 |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 / 피터 브뤼겔 (0) | 2011.11.25 |
세례자 요한의 처형 / 니클라우스 마누엘 (0) | 2011.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