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야곱 / 렘브란트 (1656년, 173x209cm, 독일 카셀 미술관)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년)는 인간의 따스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로, 이 그림은 창세기 48장을 소재로 한 것이다.
지금 야곱이 큰손자 므나쎄와 작은손자 에프라임을 축복하고 있으며, 그 아비인 요셉과 어미인 에세낫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 포근한 분위기가 단란한 가정의 행복한 일상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성경에 따르면 이들은 지금 이집트의 한 천막 안에 있다. 그런데 이들은 구약시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즉 야곱은 17세기 사람들이 흔히 쓰고 다니던 두건을 쓰고 있으며, 요셉은 터키식 터번을, 에세낫은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프랑스 부르고뉴풍의 보닛을 쓰고 있다. 이처럼 화가는 당대의 분위기에 축복이라는 구약의 관습을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축복에 익숙하지 않다. 성직자가 신의 가호를 비는 행위로나 여기지 않는가? 그러나 구약시대에 축복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바로 한 가정을 책임지며, 한 민족을 지배하고, 한 부족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신성하고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지상의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다고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선 인간사에 직접 관여하시고, 믿음이 강한 이를 돕고 그렇지 못한 자를 벌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축복은 아버지나 지도자가 오른손을 장자의 머리에 얹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 축복을 받은 장자는 가족이나 부족의 대표가 된다. 죽음을 직감한 야곱은 관습에 따라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고자 이들을 불렀다. 야곱이 병약하고 눈이 어두워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기에, 요셉은 침상의 아버지가 축복하기 쉽게 장자인 므나쎄을 야곱의 오른쪽에, 에프라임을 왼쪽에 세웠다. 장자인 므나쎄에게 축복의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엇갈리게 내밀어 작은 손자인 에프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한 요셉은 “아닙니다, 아버지. 이 아이가 맏아들이니, 이 아이 위에 아버지의 오른손을 얹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손을 잡는 모습이 그림에 보인다. 그러면 왜 야곱은 전통을 무시하고 에프라임을 선택한 것일까? 눈이 어두운 야곱의 실수였을까? 이에 대해 야곱은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알아.” 하면서, 이 엇갈린 손의 축복이 다분히 의도적임을 시사한다.
특히 야곱이 “이 아이도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후손은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다.”라고 답한 일화는 우리 육신의 생각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하등의 자격이 없는 자를 선택하시는 무상의 자비를 보여주신 것이다. 바로 하느님의 축복은 그분의 선하신 뜻에 따른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눈 좋은’ 요셉이 ‘눈먼’ 야곱의 통찰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마치 이 그림의 관람객인 우리가 하느님의 섭리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렘브란트는 성경의 주제를 표현하고자 성경을 읽고 깊은 묵상을 한 뒤에 붓을 잡았다. 이는 말씀의 심오한 중심 주제를 적확하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로 그의 심오한 영적 성찰의 결과다. 이 그림에서 야곱의 엇갈린 손은 십자가 형상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수난의 한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지금 에프라임의 모습으로 육화되어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프라임의 머리에는 후광이 묘사되어 있으며, 가슴에 모든 두 손은 하느님 말씀을 좇는 종의 다소곳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실제 형인 므나쎄에 비해 한층 성숙해 보이는 모습 역시 앞날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를 이미지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므나쎄가 정통 유대교를 의미하는 반면, 앞으로 닥칠 예수님의 수난을 상징하는 에프라임은 가톨릭교회와 하느님의 말씀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눈 밝은’ 인간 세상과 격리된 성스런 공간이다. 그림의 붉은 침대보와 벽면의 커튼은 이 공간이 세속의 공간과 다른 곳임을 암시한다. 이 공간에는 가족 삼대가 성스런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이 가족 초상화는 17세기 당시 유행한 양식으로 신흥 부르주아들의 가족관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런 만큼 이 그림은 종교개혁 이후, “인간사는 비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성스러운 것이며 금욕보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멀린히톤)라고 주장한 루터교의 입장을 암묵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그림의 본디 의도는 지금과 같은 형상이 아니었다. 이 그림 속의 요셉은 현장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성경에 나타난 대로 에세낫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야곱과 두 손자만이 뚜렷한 그림의 중심 소재를 이루고 있었다. 렘브란트가 이와는 달리 그림을 따뜻한 이미지의 가족 초상화로 새롭게 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지 싶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린 1656년은 그에게 최악의 해였다. 파산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생활고였다. 그의 그림과 아울러 그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 컬렉션과 집은 모두 경매에 넘어갔으며, 거처를 빈민가로 옮겨 지극히 곤궁한 생활을 시작한 터였다.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 사스키아는 14년 전에 세상을 떴고, 새 아내 헨드리키에와 아들 티투스만이 지친 그의 곁에 있었다. 그에게 예술적 자양분이 될 정신적, 물질적 여건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런 존재론적인 위기에서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따스하고 단란한 가정이 아니었겠는가? 그 행복한 가정은 하느님의 황금빛 가호로 가득한 곳이었을 것이다. 이런 단란한 가정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그는 삶의 덧없음과 새롭게 탄생하는 생명의 이유도 깊이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꺼져가는 생명과 아울러 새롭게 피어나 가족과 민족의 번영을 가져올 아이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곧 육신의 죽음에 대한 영적인 삶의 영원함을 표현한 것이다. 바로 렘브란트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의 섭리에 빗대어 자신을 위로한 흔적이 뚜렷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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