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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인간생활의 허영 / 하르멘 스텐베이크

by 파스칼바이런 2011. 11. 25.
인간생활의 허영 / 하르멘 스텐베이크

 

인간생활의 허영 / 하르멘 스텐베이크

(1645년경, 51x39cm, 오크 나위 위의 유화, 런던 내셔널 갤러리)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화가 하르멘 스텐베이크(Harmen Steenwyck, 1612-1655년)가 그린 ‘인간생활의 허영(An Allegory of the Vanities of Human Life)’이라는 이름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이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정물화를 비롯해 풍경화나 초상화 등 인간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그림이 유행하였다. 이 시대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황금시대였으며, 그 경제적 부와 물질적 풍요가 극에 달하면서 화가들은 바니타스, 곧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덧없음과 헛됨을 그림에 담았다.

 

이 그림에는 많은 물건들이 너부러져있다. 화면의 중앙에 음산한 해골이 있으며, 그 주위로는 아무렇게나 놓인 책들과 악기가 있고 뒤쪽에는 일본도(刀)를 비롯해 불 꺼진 향로가 있다. 왼쪽에는 조개껍데기와 크로노미터라는 당시의 시계가 보인다. 오른쪽에는 나무 상자 위에 커다란 술병과 함께 류트라는 악기가 뒤집혀있다. 무언가 심상찮은 분위기이다.

 

이 모든 물건들은 청각(악기)과 후각(향로), 촉각(칼)과 미각(술병) 등 인간 감각과 연관된 것들로, 감각과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 현실을 제각기 무거운 침묵의 언어로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특히 전체적인 도상들의 어수선함은 풍요 속의 허탈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 작품은 구약성서의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전도 1,2)라는 내용을 상기시키는 작품으로,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이는 바니타스의 전형이다.

 

이 그림 속에서 인간 지식을 상징하는 책은 지식의 허영을 고발하고 있다. 책은 인간들에게 지식과 학문 습득의 수단이지만, 역시 허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전도 1,18). 리코더와 숌(오보에의 전신)으로 묘사된 악기는 구혼과 사랑의 행위에 동원되는 것으로 흔히 감각적 사랑의 기쁨을 나타낸다. 특히 그림에서 관악기는 남성성을 나타내며, 부드러운 곡선의 현악기는 여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속적이며 쾌락적인 향락을 암시한다.

 

일본도와 조개껍데기는 당시 수집가들의 진귀품으로 부와 풍요를 상징하며,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부와 풍요에 대한 인간의 탐욕 또한 허영이 아닌가? “사람은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것뿐이라, 바람을 잡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전도 5,15). 특히 빈 조개껍데기는 죽음과 허무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드러낸다. 일본도는 무기의 힘으로도 죽음을 무찌를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런 일을 감시할 웃어른이 있고 그 위에 또 웃어른이 있다.”(전도 5,7)는 성서의 말을 상기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림 오른쪽 상단의 탁자 위에 놓인 끈이 달린 병은 술병이며, 그 옆의 물체는 류트를 엎어놓은 것이다. 술과 악기 역시 인간 삶의 쾌락과 즐거움을 나타낸 것이다. 크로노미터와 불이 막 꺼진 램프는 인간생활의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암시한다. 특히 크로노미터는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전도 3,1)는 말처럼 우리가 지상에 머무는 시간의 유한성을 말하며, 막 불이 꺼져 연기 꼬리가 남은 램프 역시 시간의 흐름과 인간 존재의 허약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해골 형상, 죽음을 의미하는 그 해골은 턱이 빠져있다. 진리를 전하고 다닌 설교자의 해골인가? 그 턱이 빠져있는 모습에서 진리의 외침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고발하는 동시에 지나치게 말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턱도 없고 이도 온전하지 못한 그 보잘것없는 모습이 죽음의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왼쪽 윗부분의 빛이 해골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가 죽음이며 죽음 앞에서 인간의 모든 욕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단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 해골에 비친 빛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며, 모든 인간 삶의 허영은 해골이 상징하는 죽음에 지배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있다.

 

인간의 개인적인 허영과 욕망으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자주 보이고 사람의 욕망 때문에 자연의 재앙이 난무하는 시대에 내 자신을 반성하고 일상의 내 행위가 항상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아닌가?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림의 빛줄기와 그 빛으로 환한 모습을 드러내는 분홍색 탁자보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삶의 기쁨과 희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편에 다시금 희망의 가치를 새겨본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사 석사, 파리 3대학교(Sorbonne)에서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