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 1460년경, 프레스코화 290x254cm, 이탈리아 산 세폴크로 피나코테카 미술관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6?-1492년)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신으로, 원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맑은 색채와 깔끔한 빛의 처리, 위엄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 표현 등으로 그 시기에 보기 드문 획기적인 양식을 보인 화가다. 또한 그는 미술에 대한 일류 이론가로 알려졌으며 “투시화법에 대하여”를 저술하였다.
그의 ‘부활’이라는 작품은 어느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실제 이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없는 만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비롯해 이 주제를 다룬 화가들은 강한 믿음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엄숙하고 장엄하며 숭고한 역사적 현장을 그리고자 수학과 기하학 곧 인간 이성의 산물을 기반으로 하였다.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려고 인간의 이성을 수단으로 한 것은 인간의 이성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겸허한 신앙인의 자세를 보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이 그림은 형태상 기하학적 구도와 더불어 빛과 색채의 사용, 그리고 탁월한 원근 처리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숭엄하게 표현하였다.
먼저 이 작품은 화면이 3등분되어 있다. 위의 3분의 2는 부활하여 무덤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에 할애하고 있으며, 아래의 3분의 1은 무덤을 지키다 잠든 로마의 파수꾼들에게 할당했다. 특히 윗부분의 배경 공간은 원거리의 풍경이 점유하고 있어 시각적인 깊이감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런 기하학적 분할구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배치가 정삼각형 구도를 취하며, 예수님의 깃발과 배경의 나무들이 지닌 수직선과 예수님이 누워있던 관의 수평선이 부여하는 대비효과가 시각적인 안정감을 더한다. 이런 수직과 수평이 갖는 경직성을 오른쪽 병사의 사선으로 기운 무기가 해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이런 기하학적 분할뿐 아니라 인물들 상호 간의 대비도 보이는데, 이처럼 상반되게 표현한 요소들은 그리스도교의 의미 곧 하느님의 섭리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 화가는 영원한 하느님의 세계를 드러내려고 예수님의 모습을 삼십대 후반의 말끔하고 당당하며 잘생긴 모습으로 묘사했는데, 이 모습은 세속의 때에 찌들고 고단함에 지쳐 잠든 못생긴 병사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강인한 팔과 손으로 십자가 깃발을 똑바로 들고 한 발을 관 위에 성큼 올려놓은 예수님은 의젓하고 위엄 있는 승리자의 모습이며, 그 아래의 안일한 병사들은 자기들의 임무를 망각한 채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 것이 무기력한 패잔병의 모습이다.
특히 왼쪽에 있는 병사는 예수님의 관에서 나는 역한 냄새를 피하려고 모자를 앞으로 눌러쓰고 손바닥으로 코를 틀어막고 고개를 숙인 채 잠에 빠져있으며, 나머지 병사 셋은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깊이 잠들어있다. 아마도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을 목격하고 증언할 수 있도록 선택받은 자들임에도 그 선택된 권한을 포기한 것이 신앙인으로서 믿음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에 빠진 병사들의 무력한 모습이 교회의 미래를 위해 고통과 수난을 감내한 예수님의 영웅적인 자세와는 전혀 다르다. 군사들의 깃대도 예수님이 쥔 우뚝 선 깃대와는 달리 옆으로 위태하게 기운 것이 신앙을 거부한 나약하고 무기력한 이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의 붉은 색과 병사들이 입은 우중충한 색의 옷이 주는 대비효과는 곧 삶과 죽음, 선과 악, 광명의 밝음과 죄와 어둠의 그늘이라는 이미지 곧 천상과 지옥, 믿음과 부정의 이미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이처럼 엄격한 기하학적 양식과 아울러 다양한 대비효과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섭리를 조형적으로 드러내려 했다.
부활한 예수님 뒤의 풍경은 프란체스카의 고향인 세폴크로의 뒷산 풍경인데, 그림의 왼쪽에는 잎이 없는 큰 나무가 서있으며, 오른쪽에는 그와 달리 어리지만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이 대조에서 큰 나무는 낡고 오래된 이스라엘의 유대교이며, 작은 나무는 여리지만 생명에 찬 미래의 그리스도교를 상징화한 것이다.
이런 기하학을 비롯한 다양한 대비효과와 아울러 인물의 모습이나 풍경과 나무의 모습에서 눈으로 관찰한 것을 그대로 묘사하려고 한 사실적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관찰이라는 이성을 토대로 창작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성경의 내용을 단순히 신비스럽고 애매하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처지에서 해석하여 더 사실적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이는 위엄과 권위에 찬 종교의 이미지를 친숙한 인간의 실제 삶의 모습으로 다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바로 우리 가까이, 아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닐까?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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