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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벽난로막이 앞의 성모와 아기예수 - 로베르 캉팽

by 파스칼바이런 2013. 11. 8.

 

[교회미술 산책]

벽난로막이 앞의 성모와 아기예수 - 로베르 캉팽

 1430년경,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Master of Flemalle)

1378/79-1444), 목판에 유채, 63.5×4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영국

 

 

바닥의 대리석 문양이 원근법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선을 따라가노라면 우리 시선은 창문 너머 성당이 보이는 풍경으로 인도된다. 여기 성경을 읽고 있던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잠시 화려한 대리석 쿠션 위에 올려놓았는데, 바람에 날리는 책장의 표현이 너무 생생하다. 황금실의 긴 머리를 길게 풀고 있는 성모님은 후덕한 플랑드르 아낙네의 모습으로 젖을 물리려고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성스러움으로 치장한 모습이 아닌, 모성애가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연회색의 고급스러운 모피가 안감으로 대어있고 연보라 드레스 밑단의 금 테두리에 박힌 화려한 보석 장식만이 이 여인이 고귀한 존재임을 알려준다. 풍만하게 묘사된 성모님과 달리 이상하게 뒤틀린 듯 왜소한 아기 예수님은 관객을 바라보며 몸부림치고 있는데 이는 후에 그가 당할 수난을 예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성모님의 머리 뒤에는 짚으로 엮어 만든 벽난로막이가 있는데 이는 후광으로 보인다. 그 뒤에 벽난로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마치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는 듯이 보인다. 이는 플랑드르 화가들이 즐겨 표현한 화법인 ‘위장된 상징주의’로,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다(박혜원 소피아).

 

 


 

로베르 캉팽

(Robert Campin 1375? ~ 1444.4.26)

 

초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가. 미술사에서 '플랑드르의 거장'으로 불리며, 뛰어난 사실 묘사와 선명한 색채 구사로 초기 유채화의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

    

로베르 캉팽은 1375년경 벨기에 투르네에서 태어났다. 미술사에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에 버금가는 공헌을 한 인물이지만 오랫동안 이름 없이 '플랑드르의 거장 Master of Flemalle'으로만 불리어졌을 뿐, 이 사람이 로베르 캉팽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나 미술사가들의 끊임없는 연구 속에 '플랑드르의 거장'이 바로 캉팽이라는 사실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캉팽은 초기 플랑드르 회화를 성립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406년 제조업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투르네에 자신의 공방을 열어 그가 살고 있는 도시와 그곳의 부르주아 시민들을 화폭에 담았다. 특히 그는 성모자나 수태고지 같은 성스러운 주제를 평범한 시민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으로 묘사하면서 15세기 북유럽 집 내부의 풍경을 매우 세세하게 재현했다.

 

뛰어난 사실 묘사와 선명한 색채 구사로 초기 유채화의 정착에 크게 기여한 그는 당시 널리 유행한 국제 고딕양식과는 구별된 새로운 화풍을 선보였다. 그의 이러한 화풍은 제자인 자크 다레(Jacques Daret)와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에게 이어져 발전되었으며, 한스 멤링(Hans Memling)과 렘브란트(Rembrandt)의 작품에서도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주요 작품에는 《예수 매장 세 폭 제단화 Entombment Triptych》(1415~1420), 《메로드 제단화 The Merode Altarpiece》(1425~1428),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Woman》(c. 1430), 《화열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 The Virgin and Child before a Firescreen》(1430), 《수태고지 The Annunciation》(1430~144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