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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 나달

by 파스칼바이런 2014. 10. 25.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 나달

1595, 목판화, 성녀 글라라대학

 

 

[말씀이 있는 그림] 하느님의 밭

 

예수회 수사인 제롬 나달(Jerome Nadal, S.J., 1507~1580)은 예수회의 화보집인 『복음서 묵상 삽화(Evangelicae Historiae Imagines)』를 제작했다. 이 화집은 예수회를 창설한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동료 나달에게 복음묵상을 삽화로 제작하여 배포할 것을 지시한 것이었다. 나달은 1574~77년부터 예수회의 젊은 학생들에게 숙고(熟考)하고 설교를 돕기 위하여 모든 복음사가에 대해 노트와 명상을 적었다. 나달은 이를 토대로 성경 내용에 따른 아름다운 그림을 삽입하기를 원하였다. 이 화집은 1593년에 교황 클레멘테 8세에 의해 안트워프에서 간행되었다. 나달은 이탈리아 화가였던 베르나르디노 파세리에게 밑그림을 그리게 하고 안토니에 비에릭스에게 동판화로 제작하도록 하였다. 모두 153면으로 되어 있는 이 화집은 예수회의 선교활동에 활용되었고 서양화법을 동아시아에 전하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화집에는 그림 전체의 구성과 지시와 함께 몇 부분을 골라 해설까지 곁들이고 있다.

 

그 가운데 92번째 삽화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그린 것이다. 화면의 맨 앞에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은 밭 주인이고, 그 앞에 삽을 들고 밭 주인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있는 사람은 소작인들이다. 그들 뒤에는 가지런히 잘 자란 비옥한 포도밭과 앙상하게 포도나무 기둥만 자리한 밭이 보인다. 잘 가꾼 땅과 볼썽사나운 땅이 구분된다. 왼쪽 중앙에 담 뒤로는 소작인들이 삽으로 한 사람을 매질하고 있다. 밭 주인은 포도밭 소출을 위해 여러 번 종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낸다. 그러나 그들은 종들을 붙잡아 매질하고, 죽이고,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여, 밭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 소출해 올 것을 바란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삽으로 주인 아들을 매질하고 있다. 결국 아들은 상속권을 얻으려는 소작인들에게 포도원 밖으로 던져져 죽음을 당한다.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이고, 주인이 파견한 종은 예언자들을 의미한다. 소작인들에게 포도원 밖으로 던져져 죽음을 당한 사람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시다. 그림 왼쪽 뒤에는 예수님의 죽음 장면,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과 가운데에는 부활한 예수님이 보인다. 즉,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쓸모없는 돌로 여겨 죽였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되신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시편 118,22).

 

소작인들은 주인의 뜻에 불순종하며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겼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밭 주인은 포도밭을 다른 소작인들에게 맡길 것이다. 그림 가운데 메마른 밭 위에서는 창과 방패를 든 사람들이 소작인들(악한 자들)을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있다. 그들 뒤에는 포도밭을 맡을 다른 소작인들인 이방인의 무리가 서 있다. 이방인들은 하느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밭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풍성한 소출을 낼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이 유다인들에서 이방인들에게, 바로 믿음을 간직한 이들에게 옮겨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1-2)

 

[2014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