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의 비유 - 카스파 루이켄
1712년, 동판화, 캔들러신학대학, 에모리대학교
[말씀이 있는 그림] 혼인 잔치에 초대
카스파 루이켄(Casper Luyken, 1672-1708)은 삽화양식으로 성경 내용을 표현하였다. 그는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16살 때에는 그의 아버지의 동판화 작업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기술을 갖추었다. 삽화작업은 신자들이 시각적인 의미를 통해 성경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에 화려한 벽장식이 된 실내를 배경으로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다. 혼인 잔치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매우 유사하지만, 성화에서는 상당히 구분되어 나타난다. 루카 복음서를 내용으로 하는 그림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초대에 초점을 두고 묘사하고 있다.
반면에 마태오 복음서를 내용으로 하는 그림에서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 초점을 두고 묘사하고 있다. 그림 앞 왼쪽에서 임금이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며 종들에게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지라고 호통치고 있다. 두 명의 종은 예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의 발을 묶고 있다. 이들 뒤로는 혼인 예복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긴 식탁에 둘러앉아 잔치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다. 임금은 잔치에 자리가 채워질 때까지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잔치에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임금은 하느님을, 혼인 잔치는 하느님 나라를 표상한다. 임금의 아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는 것을 준비하는 잔치에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아무나 초대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임금)께서 하느님 나라(혼인 잔치)에 누구든지 초대했다고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 앞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아 몸이 묶여 바깥으로 내버려지는 사람처럼, 혼인 잔치에서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주님, 주님’을 말로는 외치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가짜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가장 맛나고 풍성한 음식을 먹고자 한다면 그 잔치에 꼭 어울리는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함이다.
그림의 전체 구성은 합리적인 원근법과 함께 고전 건축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건축물 벽 위쪽에 과일과 채소를 엮은 화관 모양의 띠 장식은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뒤에 건축물 왼쪽과 오른쪽 아치형 벽감 안에는 각각 수금과 창을 들고 서 있는 조각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창은 수난 도구들 가운데 하나로 병사가 숨을 거둔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를 때 사용한 무기이다. 물과 피를 쏟게 만든 창은 수난 관련 표상들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곧 창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령의 현현이 실재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예표하는 물과 피 때문에 창은 두 성사의 기원이 되는 상징이기도 하다.
수금은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로 노래와 춤과 시와 관련이 있으며 요한 묵시록 5장 8절에서 따온 전례의 도구 중 하나이다. 수금은 하느님께 올라가는 찬양을 의미한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입고 있던 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때 묻지 않은 혼인 예복으로 갈아입혀 주셨다. 혼인 잔치에 영원히 참여하기 위해 매일 성체를 받아 모시며 수금을 들고 혼인 예복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찬미가를 끊임없이 올려야 할 것이다.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자기들의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시편 149, 5)
[2014년 10월 12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