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 전순영 시인
짜낸 젖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돌면서 달려드는 길과 결투를 하면서 어둠의 아가리 속에서 어둠과 싸워야 했다
어떤 이는 젖소가 욕심이 많으니 쏴 죽여야 한다고 어떤 이는 우유를 짜낼 수 있으니 살려두어야 한다고 어떤 이는 수레를 끌려야 한다고
주인이 젖소 첫 단추를 뒤틀리게 달아놓고 억지로 꿰맞추려고 하얀 젖소의 목을 움켜쥐고 검은 젖을 담았다고 젖소더러 검은 젖의 값을 내놓으라고 젖소를 쏴 죽여야 한다고 몽니를 부리고 젖소더러 이웃에 있는 풀까지 다 뜯어먹었으니 그 풀 값을 내놓으라고 한다
젖소를 때려잡으려면 때로는 사자를 빌려 오기도 젖소가 피를 흘리거나 말거나 젖이 까맣게 타버렸거나 말거나 목을 비틀어 젖만 짜내려는 주인 욕심에 불이 붙었다
젖소는 잠을 못자고 더 많은 어둠을 깨물어 삼키고 군소리 없이 하얀 젖을 짜내야 한다 지구를 등에 지고 변방으로 내몰리면서 ...
양이나, 염소 토끼 닭이나 까치 비둘기 참새도 마른 젖을 쥐여 짜이는 비명소리가 강을 적신다 하늘도 한 번 안 쳐다보고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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