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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정옥 시인 / 오후 5시 사람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3.

오후 5시 사람

박정옥 시인

 

 

          아프리카 '해뜨는 나라' 시계는

          매일 해 뜨는 시간이 1시,

          해가 지는 24시가 되면 하루가 끝난다.

          하루치의 시간으로 일생이 배열되고

          18분으로 삼백육십다섯 날을 산다는 나라

           

          '해 뜨는 나라' 시계를 빌려 온

          나는 오후 다섯 시 사람

          그때 나는 마악 피어난 여름의 신발 같은 것

          (서른둘이던가)

          밍밍한 바람을 맞으며

          3시에 강을 건너려고 요일을 불러냈다

          (아마 마흔 몇이었지)

           

          그리고 몇 차례

          차를 놓친 오후 5시를 걷어찼다

          늑대와 개의 시간을 골라

          저녁의 마디마디를 끓여내는 중에도

          시계 속에는 없는 rhapsody

           

          볼륨을 높이는 미래가

          돌려 읽는 책 같은 거라면

          나의 20년 오브제는 물컹한 꿈의 헛발질

          늘어지고 가늘가늘한 잠의 맨손이

          새벽을 꺼버리는 우묵한 시간인 듯이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박정옥 시인

2011년 《애지》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거대한 울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