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인 시인 / 무늬 -군중
1 나는 당신을 본뜬 심장을 갖고 싶었다. 세상을 훔치는 일정한 리듬과 비유를 가진 당신의 모국어가 되고 싶었다. 당신으로 환승하는 레일 위의 기차.
피가 흐르는 검붉은 감정을 연습하며 나는 조금씩 당신의 입김이 되었다. 당신을 이식하며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보고 서 있다. 당신이라고 되뇌는 나는 복제된 슬픔.
나와 당신, 그리고 나와 당신 도무지 맞춰지지 않는 퍼즐처럼. 엎드린 이교도의 멍든 무릎처럼.
인화되기 직전의 표정들이 당신을 통과하고 나를 통과하고 마침내 하나가 되는 이상하고도 몽롱한 키스.
2 당신과 나는 샴
분리될 수 없는 기형의 아름다움. 침범할 수 없는 진공. 천천히 녹슬어가는 벽 속의 구부러진 못. 너무 많은 것을 주고받고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샴, 기억 상실의 바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 속에서 당신 속으로 빨려 드는 수없이 많은 나. 내 속에서 자라나는 끝없는 당신.
우리는 흡혈의 절정 속에서 다리가 사라지고 머리가 사라지고 가슴이 사라진다. 사라지면서 알게 되는 우리라는 오래된 그물.
나와 당신이 뭉쳐 다시 태어나는 낯선 눈빛들, 지나쳐버린 서로의 측면을 늘어놓은 채 서서히 번식하는 피가 흐르는 시간.
3 한 걸음만 더 당겨주세요. 울컥울컥 피가 쏟아지는 당신의 체온이 나의 야경이 될 수 있도록.
어둠 속 체위의 절반은 침묵의 변주 그 안에서 무한대로 번식되고 있는 나와 당신.
어둠을 배경으로 흘러넘치는 곡선을 따라 우리는 한 소절 피 묻은 묵음이다.
말하지 못하는 눈빛과 말문을 닫아버린 표정을 담고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지나친다. 당신 속에서 허물어진 나와 내 속에서 빠져 나온 당신은 뭉쳤다 흩어지는 어둠의 입자들. 멀어지면서 사라지는 걸음을 따라 야경은 차가워진다.
4 피가 식어가는 당신과 나의 시간 속에서 잉태되는 무의미들,
한 걸음씩 천천히 광활해지는
월간 『현대시』 2018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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