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시인 / 우표를 붙이겠습니까
우체국에 갑니다 쓸쓸해서 새도 없이 새장을 키우면서 말이죠. 오늘의 날씨에 소인을 찍는다면 아침에 본 깃털을 저녁에도 볼 수 있나요. 어제 사랑한 얼굴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요. 새장을 키우면 새는 한 번쯤 고백을 할까요.
우리가 다시 사랑한다면 마르고 닳도록 침이 마르게 어제의 계단을 닦겠습니다.
마흔 살부터 똑같은 헤어스타일 국물 없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문을 열자마자 브래지어를 벗어던질 때 우표를 붙이겠습니까 새도 없는 새장에서 깃털이 떨어지고 아무리 흔들어도 새장은 깨어나지 않아요.
오늘의 운세는 희망을 가져도 좋습니다. 나는 또 우체국에 갑니다. 아무렴요.
계간『문예바다』 2018년 봄호 발표
김효선 시인 / 여자 47호
여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피아노를 먹어치운다. 무섭다고 말하는 작은 깃털과 떨어진 머리카락 늑대가 조상이라고 믿는 부족들은 늑대를 사냥한다. 받쳐야 할 오늘과 죽어야 사는 내일.
할퀸 손톱이 지나간 허공은 비어있지 않다. 사람들은 왜 봄을 기다리지? 나비가 누르는 건반 꽃잎에서 떨어지는 비늘 기다릴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나무로 태어난대 가문비나무에서 불어오는 미파솔 라미레
두 개의 색으로 모든 음을 가둔 벽 아무도 그 벽을 허물지 않는다 딴딴딴 나무가 걸어가지 못한 길은 빗방울이 대신 걷는대 돌아가지 못한 빗방울이 숲의 소리를 갖는다. 조금만 더 살아보자 살아보자. 축축한 공기 속으로 쏠리는 질문들 의심들 나무들
태어나 제일 먼저 본 것이 수초 속 캄캄함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자꾸 불러오는 저 달이라면 선잠을 자다 붉게 핀 꽃꿈을 너에게 줄게
꽉 조인 코르셋이 악어가 될 때까지 피아노는 돌아오지 않는다.
계간『리토피아』 2018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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